2차 세계대전서 패전국 된 독일
경제·정치적 혼란 예상과 달리
상생 경제체제 기반 마련 성공
정당 간 연대·실용정치 토대 구축
사람 아닌 정책이 이끄는 국가로

[이 책 어때]독일에 있는 '조화'의 정치 한국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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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에서 승기를 거머쥔 연합군이 패전국인 독일에 취한 조처는 가혹했다.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농업과 목축업 국가로 재편하려 했다. 먼저 경제적으로 재벌 해체를 단행했다. 규모의 경제를 막아 경제적 성장을 제한하기 위함이었다. 정치적으로는 원내에 다양한 정치세력을 진입시켜 혼란을 부추겼다. 그렇게 하면 내부 갈등 여파로 단합이 어려워 소모적 정쟁에 치중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연합군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해당 조처는 오히려 독일의 성장을 도왔다. 독점 재벌이 사라진 자리에 수많은 강소기업이 들어섰고, 독일은 막강한 제조업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고, 산별노조가 들어서 동종 업계 내에서 노동자의 처우 차등을 줄였다. 노조는 무리한 투쟁 대신 기업의 주요 결정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고 상생 경제 체제의 기반을 마련했다.

정치도 마찬가지. 다양한 정치 진영이 원내에 진입하면서 다양한 목소리가 대변됐고, 자연스럽게 장외 투쟁이 줄어들었다. 절반을 넘기기 어려운 정치구조는 정당 간 연대를 가능케 했고, 반목 정치보다는 토론과 합의를 우선하는 합리적 실용 정치 토대가 구축됐다.


일부 사안은 국내에도 차용됐다. 헌법재판소, 비례대표제 등이 그 사례다. 한독 관계 증진에 기여해 2008년 독일 정부가 수여하는 일등십자공로훈장을 받은 ‘독일통’인 김종인 저자는 본인이 제안했던 근로자 저축에 정부가 이자를 더해주는 근로자 재형저축(1976), 500인 이상 사업장 의료보험 의무 시행(1977) 등도 독일 사례를 보고 깨달은 것이라고 고백한다,

독일 경제가 되살아난 배경에는 많은 우연이 자리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독일 경제사령탑을 맡은 루트비히 빌헬름 에르하르트는 1948년 6월20일 점령군의 지시에 따라 화폐개혁 조치 정책을 발표하면서 평소 자신이 구상한 경제기조를 함께 발표해 버린다. "앞으로는 배급제를 철폐한다. 가격통제도 폐지한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과 시장경제를 도입한다." 에르하르트는 점령군 사령부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으나 운 좋게도 6개월의 시간을 얻어냈고, 그런 시도는 독일 경제 부흥의 문을 열어젖혔다. 공산세력 견제 차원에서 ‘일단 독일을 살려놔야 자유 민주 진영도 살 수 있다’는 기조로 미국 마셜플랜의 수혜를 입은 것도 독일로선 행운이었다. 이후 에르하르트는 국민으로부터 "우리를 먹여 살린 사람"이란 평가를 받으며 14년간 경제 장관을 역임, 총리 자리까지 올랐다.


저자는 독일은 민주주의의 불완정성을 극복한 좋은 사례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불완정성이란 1차 세계대전 이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모든 불행의 원인은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있다"고 주장한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만큼 민주주의가 ‘빈곤’과 ‘선동’에 취약하다는 것. 다만 이를 경험한 독일은 달라졌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책임을 두고 독일 정치권이 ‘나치만의 잘못’과 ‘독일의 잘못’으로 의견이 갈렸으나 독일 국민은 후자를 택하면서 국내는 물론, 주변국과 화해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었다. 참고로 당시 독일에선 ‘보수’라는 말조차 금기시되면서 보수적 이미지를 지닌 ‘기독교’를 정당명에 사용하기도 했다. ‘기독교사회연합’ 등이 그 사례다.


저자는 독일에는 진보와 보수가 없고 오로지 ‘정책’이 있다며 한국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고 온 나라가 정치적 내전을 치르는 것처럼 365일 들끓거나, 다수 의석과 행정부까지 독점한 대통령 권력 집단이 입법부를 허수아비로 만들면서 나치 독일처럼 폭주(한다)."


반면 민주주의가 악용된 뼈아픈 경험을 한 독일은 의회 합의로 선출한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독일식 내각제를 취하고 있다.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을 양분하는 이원집정부제로는 제대로 된 견제가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연합군의 조처도 도움이 됐다. 과반 형성을 막아 정쟁 혼란에 빠져들게 하려 했지만, 독일은 오히려 ‘조화와 타협을 통해 단결하는 방식을 터득’했다.


조화와 타협의 정치는 당이 힘을 합치는 이른바 ‘연정’을 가능케 했고, 이는 정책 중심의 예측 가능한 정치를 현실화했다. 독일에선 정당 간 연정이 결정되면 연정합의서를 채택하고 공개하는데 분량이 500쪽에 달한다. ‘앞으로 우리는 이런 일을 이렇게 하겠다’를 자세하게 적시해 향후 오해와 마찰을 대비할 수 있고, 국민은 "앞으로 몇 년간 독일은 이런 식으로 나아가겠구나"를 예측할 수 있다. 독일 정당이 향후 집권 시 총리, 장관 임명안을 미리 정해놓고 공개하는 ‘섀도캐비닛’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처럼 국민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장관 후보자로 등장해 대통령과 학연이 어떻다느니, 지연이 어떻다느니, 혹은 영부인과 인연이 어떻다느니 하는 묘한 소문이 떠도는 것을 독일 정치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사람’이 아니라 ‘정책’이 이끌어나가는 국가가 정상적인 국가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정책이 이리저리 뒤바뀌고, 장관도 여당도 공무원도 온통 대통령의 심기만 살피는 국가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중략) 유사 왕정 국가일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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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어떻게 1등 국가가 되었나 | 김종인 지음 | 오늘산책 | 348쪽 | 1만8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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