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상인 "추석 코앞인데", 손님 "생선 얼려 쓸 것"…오염수 방류 노량진수산시장
올 초부터 줄던 매상에 설상가상 하소연
추석 앞두고 생선 얼려 놓겠다는 손님들
상인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무기력해"
"일본 오염수 12년 전에도 유출됐잖아. 이미 다 돌아다닌 건데……."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하루 전인 23일 오전 9시께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물도매시장 대중경매장. 중매도인 김모씨(71·남)는 24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불안해하는 거래처 일식집 사장과 얘기하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경매가 끝난 자리엔 스티로폼 박스에 얼음을 넣고 생선을 정리하는 중매도인과 스티로폼 박스 뚜껑을 열고 수산물을 펼친 중매도인들이 섞여 있었다. 김씨는 새벽 경매를 진행한 뒤 오전 10시까지 이곳에서 수산물을 도산매로 팔고 있다.
23일 오전 9시께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대중경매장. 경매가 끝난 이곳은 스티로폼에 생선을 정리하는 상인들과 자리를 깔고 수산물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섞여 있었다/사진=황서율 기자chestnut@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진 이후 김씨는 오염수가 괜찮다는 근거를 손님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두꺼운 책도 읽었다고 한다. 그는 "연어나 이런 건 회귀성이라 태평양까지 갔다가 돌아오지만 이런 오징어는 1년살이고 국산 고등어는 우리나라에만 산다"며 팔고 있는 수산물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막힘없이 설명했다. 그런데도 타격은 현실로 다가왔다. 그는 "횟집도 소매도 원체 장사가 되지 않다 보니 많았던 단골 거래처도 안 온 지가 몇 주 정도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와 같은 상인들은 일본에서 봄·여름쯤 오염수를 방류하겠다고 밝힌 올해 초부터 매출이나 장사에 타격을 입고 있다고 전했다. 스티로폼 박스에 목포산 민어를 얼음과 함께 넣으며 정리하던 최성규씨(60·남)는 "장사에 지장이 엄청나게 크다"면서 "우리는 이쪽에 종사하는 사람이니까 먹겠다고 하겠지만 손님들은 안 먹고 싶어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경매장 안쪽 도·소매장은 '휴가 다녀옵니다' 문구를 걸고 문을 닫은 상점과 아직 출근하지 않은 상점들이 여럿 있어 어둑어둑했다. 평상시 빨리 나온다는 60대 진모씨는 "물건이 많이 나갈 땐 새벽 4시에도 나오지만 요샌 오전 6시나 7시에 나온다"며 "장사가 안되니까 출근 시간도 늦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산을 취급하지 않거나 줄였다는 상인들도 있었다. 불이 꺼진 상점 한편에는 '품명 도미/원산지 일본'이라 적힌 수족관이 있었는데, 안에서는 겨우 세 마리만 헤엄치고 있었다. 상인 강모씨(63·남)는 "이전에는 꽉꽉 채워놨는데 찾지를 않으니 많이 안 갖다 놓는다"고 말했다. 대중경매장에 있던 소화섭씨(67·남)는 "일본산이라면 가리비 같은 게 있는데 이미지도 나쁘고 그래서 그냥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며 "일본산은 별로 들어오는 것도 없다"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상인 정모씨(55·남) 또한 "일본산 수산물은 일부러 취급하지 않기도 하지만 수량이 줄면서 단가도 전보다 비싸져서 안 들인다"고 곁들였다. 실제로 이들의 말처럼 2010년 8만1847t이었던 일본산 수입 중량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후인 2011년 5만954t으로 37.74% 감소했고, 지난해에는 3만2588t을 기록했다. 올해 7월까지의 수입 중량은 1만5858t이다.
상인들의 말을 빌리면 평일은 보통 장사가 안되는 편이지만, 이날 따라 생선을 사는 손님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 김씨와 대화를 나누는 5분 남짓한 시간에도 3명의 손님이 연달아 생선을 살펴봤다. 곳곳에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다니는 손님들이 오갔고, 민어를 정리하던 한 상인은 그 앞에서 발길을 멈춘 손님과 얘기하더니 생선과 돈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손님들이 시장을 찾은 이유는 상인들 입장에서 긍정적이진 않았다. 대부분 일본이 오염수를 방류하기 전 미리 사놓으려는 발길이었다. 남편과 함께 장을 보러 온 장모씨(61·여)는 남편을 가리키며 "오늘까지만 회를 먹고 이제부터는 민물장어만 먹는다고 한다"며 "다른 생선도 오늘 사서 냉장고에 얼려두려고 왔다"고 말했다. 장씨는 이미 대형마트에서 조기 네 박스 구매해 얼려놨다고 덧붙였다. 백모씨(70·여) 역시 "추석을 앞두고 오늘 병어나 민어를 사서 얼려놓으려고 한다"며 "국산이라도 내일 이후에는 오염될까 봐 무서워서 가짓수를 조금 늘려서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시민 불안감을 잡기는 역부족이었다. 조영자씨(72·여)는 "원전이 워낙 크기도 하고 우리나라에 해류가 맨 나중에 돌아온다고 하지만 바닷물은 액체이기 때문에 옆으로 빠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며 "지금은 뭘 해도 신뢰가 들지 않고, 세월이 지나야만 괜찮아질 듯하다"고 토로했다. 민어를 담은 스티로폼 한 박스를 들고 가던 이희섭씨(53·남)는 "횟집을 운영하는데 손님도 없고 예약도 없어 매출이 확 떨어졌다"며 "매체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 우려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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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은 바꿀 수 없는 상황에 무기력함을 드러냈다. 정씨는 "집회도 해봤지만, 우리만 힘들었다"며 "서민들은 정책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체념했다. 최씨 역시 "정부가 안전성을 설명해도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며 "세상 굴러가는 대로 살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추석까지만이라도 잠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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