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레전드 수비수와 팬클럽 회장, 두 남자 이야기

두 남자의 이런 인연은 요즘 세상에 흔치 않다.


한 명은 8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했던 인물이고, 다른 한 명은 자장면을 파는 ‘중국집’ 사장이다.

그들이 만난 것은 20년 전인 2003년 여름이다. 부산 개금동에서 자그마한 중식당을 운영하는 송춘열 씨는 중식 사장들의 축구 동호인 멤버였고 여느 프로축구 팬 중 한 명이었다.


어느 날 가게 근처 단골 식당에서 밥 먹다 축구 얘기로 왁자한 송 씨 일행에게 식당의 여자 사장이 ‘정용환’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내 사촌동생이니 만나길 원하면 불러주겠다”고 여사장이 말했다. 회원들은 그저 으스대는 소린 줄 알았다.

축구 국가대표 수비수 시절 정용환 선수.

축구 국가대표 수비수 시절 정용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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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배우나 스타를 겪어본 ‘5060’ 세대를 ‘인증’해주는 추억의 이름 하나가 정용환이다. 차범근은 워낙 유명해서 세대 구분에 변별력이 없다.

축구 국가대표 출신의 이름이 튀어나오고 믿음직한 ‘팬 미팅’까지 잡히자 입꼬리에서 시작된 송 씨의 웃음이 귀에까지 걸렸다. 그렇게 60년생 정용환과 61년생 송춘열, 두 남자의 ‘여행’이 시작됐다.


“정 감독을 보는 순간 순수한 인간미에 끌렸습니다. 말이 없는 묵직한 남자였죠.”


첫 미팅 날, ‘정용환이 눈앞에 있다’는 소문이 전파되자 운영하던 중식당의 문을 잠시 닫거나 배달을 떠맡기고 모여든 축구 동호인들이 40명 넘었다.


정용환은 뜻밖의 환대에 고마움을 대신해 부산대 잔디구장으로 그들을 초대해 축구 특강을 해줬다. 당시 40대가 주축이던 팬들은 매월 모이기로 정용환의 약속까지 받아냈다.

정용환 감독(왼쪽)과 송춘열 후원회장.

정용환 감독(왼쪽)과 송춘열 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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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은 송 씨가 맡아 2004년 7월 29일 ‘정용환 후원회’가 공식 결성됐다. 은퇴한 ‘왕년의 스타’를 경제적으로 돕고자 하는 모임은 아니었다.


“정용환이 가고자 하는 길, 유소년 축구 꿈나무를 키우기 위해 재능을 기부하려는 그의 꿈을 지지하는 모임을 만든 겁니다.”


정용환 후원회는 유소년 축구 선수들에게 자장면을 만들어주고 때때로 정성껏 장학금을 챙겨줬다. 10주년 되던 해, 그렇게 우정을 나누며 ‘밀월’을 보내던 스타와 후원회 앞에 청천벽력이 쳤다.


2014년 정용환 감독에 위암 판정이 내렸다. 1년여 투병하던 2015년 여름, 정 감독은 병문안하러 온 송춘열 후원회장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조금만 더 살고 싶습니다.”


암 치유센터를 나온 후원회 회원들이 칼국수집에 모였다. 암 치료 기술이 가장 낫다는 독일에 정 감독을 보내 치료받도록 하자는 뜻을 모았다.


그동안 정 감독이 하는 일을 지원하던 후원회는 이제 정 감독을 직접 돕기로 했다. 회원들은 도처에서 ‘일일 호프’ 티켓 3000장을 다 팔았다. 개인 찬조금까지 더해 5000만원을 모으기로 했고 목표는 거뜬히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후원의 밤 행사가 열리기 이틀 전 그들의 ‘별’은 떨어졌다.


부산 기장군 고려병원 장례식장은 중·장년 남성들의 울음 바다에 빠졌다. 다만 그 바다는 끝이 아니고 시작을 알렸다.

정용환 후원회 사인보드를 단 차량. 이 자동차는 고인의 영구차로 사용됐다.

정용환 후원회 사인보드를 단 차량. 이 자동차는 고인의 영구차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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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정 감독이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여 뒤 ‘정용환 후원회’는 ‘정용환 축구 꿈나무 장학회’로 이름을 바꿨다. 송춘열 회장과 박행수 사무국장, 기존 회원들이 이듬해까지 장학기금 조성 사업을 펼쳤다. 2017년부터는 매년 정용환 배 꿈나무축구대회를 개최했다. 또 축구 꿈나무 육성을 위한 장학금 전달식도 이었다.


오는 6월 6일 현충일 날엔 올해 제7회 대회가 고 정용환의 고향인 부산 기장군에서 열린다. 연말에는 각 스포츠클럽에서 추천하는 어린 선수들에게 장학금을 전한다.


송춘열 ‘정용환 장학회’ 회장은 “유소년 축구에 힘쓴 고인의 뜻을 기려 기장군에 동상과 기념관을 건립할 계획”이라며, “기장군과 의회에서도 관심이 크다”고 전했다.


장학회는 2021년부터 프로축구에도 ‘정용환 상’을 만들어 상패와 상금을 전달하고 있다. 많은 곳에 ‘정용환’이 있어야만 했다.


중식업 사장 위주로 시작했던 장학회가 이제는 각계각층으로 퍼져 정치인, 사업가, 언론인까지 아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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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정 감독과)통화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며 웃는 송 회장의 마음 속에 사실상 ‘별’이 떨어진 적은 없었다.

송춘열 장학회장이 올해 추진할 사업들을 소개하고 있다.

송춘열 장학회장이 올해 추진할 사업들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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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환 축구 꿈나무 장학회는 국내 첫 스포츠 팬클럽 장학사업을 위해 결성된 조직이다. 정용환의 흔적을 되살려 해마다 대회 개최와 장학사업을 벌이고 있다. 고 정용환은 축구 국가대표로 국제대회 100회 출전을 넘는 대기록을 세웠고 1994년 은퇴 후 유소년 축구 발전에 기여하다 2015년 6월 7일 56세 나이로 생을 마쳤다.


영남취재본부 김용우 기자 kimpro77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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