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집 기와지붕이 낡아서 페인트를 덧칠하는 도장(塗裝)작업을 하게 됐다. 도장작업에는 보통 작업의 용이성 때문에 페인트를 시너(thinner)로 희석해서 사용한다. 당시 빈 시너통에 '불을 붙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라이터를 켰는데, 순간 펑 소리와 함께 시너가 폭발하면서 화염이 내 머리와 눈썹에 옮겨붙었다. 결국 난 머리카락을 스님처럼 자르고, 눈썹도 밀게 됐다. 당시 나는 시너가 폭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안전보건공단에 입사해 사업장 안전을 점검하는 일을 하게 됐다. 한번은 고철을 녹여 강철로 된 철재를 생산하는 사업장을 점검한 적이 있다. 작업장 관련 서류검토와 안전관계자와의 면담을 통해 작업공정을 먼저 확인하고, 용해로에서 발생된 흄(고체형태의 미립자)의 농도를 측정하게 됐다. 우선 용해로 위에 위치한 설비에 측정기를 설치하고, 작업공정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용해로가 쇳물을 쏟기 위해 기울면서 내가 올라간 설비도 함께 기울었다. 원형 설비에는 빨간 쇳물이 가득 차 있었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측정기 하나를 잃어버린 것으로 끝났으나,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작업공정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작업장에 출입해 끔찍한 사고를 당할 뻔한 것이다.

중소기업의 사고도 예고 없이 찾아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장은 사망에 이르는 큰 사고는 거의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작년에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먼저 시행되고 내년부터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적용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은 대다수 안전관리 전담 인력이 없는 실정이다. 앞으로도 중소기업 안전관리 개선을 위한 지원이 지속되겠지만, 먼저 고민해야 할 사망사고 예방의 기본원칙이 있다.


먼저 위험을 보는 능력을 향상해야 한다. 산업현장의 사고를 줄이려면 사업장에 설치된 기계들의 쓰임새와 가동 시 위험요인, 사용하는 물질들의 화재폭발 위험성과 독성, 그리고 작업하는 작업자들의 행동양식을 알아야 한다. 기계 및 사용물질의 위험성과 독성정보를 확인하고, 새로 추가된 내용은 없는지 살피는 습관을 일상화해야 한다.

두 번째로 주인의식을 기르고 소통을 생활화해야 한다. 사업주와 근로자들은 각자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기계의 위험요인과 작업자의 행동을 서로 고민하고 소통해야 한다. 관리자들은 작업시작 전에 오늘 해야 할 작업의 위험한 부분을 작업자들에게 인지시키고, 작업자들도 작업 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서로가 합심 할수록 생산효율도 향상되고 안전한 사업장이 조성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구성원의 참여를 활성화해야 한다. 작업공정의 위험요인은 해당 근로자가 가장 잘 안다. "우리 사업장에는 어떤 위험요인이 있을까?"를 모두가 함께 알아내고 고민해야 한다. 미흡한 점은 개선하고, 다른 위험요인을 다시 찾는 등 지속해서 위험을 없애거나 줄여나가야 한다. 작년 말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서도 사고 예방을 위해서 사업주와 근로자가 함께 참여하는 것을 강조했다.

AD

세상의 모든 문제해결이 그렇듯이 중소기업의 사고사망 예방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업장의 근무환경을 다시 한번 둘러보자. 혹시라도 안전장치 설치 및 안전한 설비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50인 미만의 사업주와 관리자가 있다면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 있는 '융자 및 보조금 지원사업'안내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진찬호 안전보건공단 중소기업지원실장

진찬호 안전보건공단 중소기업지원실장

진찬호 안전보건공단 중소기업지원실장

AD
원본보기 아이콘

세종=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