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대', '피난' 등의 용어로 피해 키웠다는 지적
지진 교훈…외국인 대상 피난 스터디도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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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동네에 나오고 있는 대피 방송을 듣고 불안해졌습니다. '고지대 피난'이라는 일본어를 필리핀 사람들이 알 수 있을지……. 차라리 방송이 '도망가'로 나왔다면 모두 알았을 텐데."


동일본 대지진이 오는 11일로 발생 12년을 맞이하는 가운데 일본 언론들은 당시 희생당한 외국인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다. 10일 아사히신문은 동일본대지진 때 희생당한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안녕이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쓰나미에 목숨을 잃은 외국인'이라는 인터뷰 연재물을 보도했다.

아사히에 따르면 동일본대지진 당시 쓰나미에 휩쓸리거나 건물 붕괴로 목숨을 잃은 외국인은 33명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공장이나 음식점 등에서 일하고 있었던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일본어에 능숙하지 않아 "쓰나미가 오니 고지대로 도망쳐라", "피난을 가라" 등의 일본어 안내방송을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희생됐다.


아사히는 필리핀에서 온 20대 여성 메이블린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필리핀에 어린 딸을 두고 일본으로 건너와 이자카야 아르바이트를 하던 사람이다. 그는 지진 발생 얼마 전 고향에 갔다가 일본으로 돌아와 일을 나가지 않고 잠시 집에 머물고 있다가 쓰나미를 맞닥뜨렸다. 지인들은 그가 일본어가 서툴러 피난 방송을 제대로 듣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필리핀 지인은 "가게에 나가 있었다면 차라리 동료들과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어도 서툴러서 방송을 알아들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후 시신으로 발견된 메이블린의 양손은 직전까지 어딘가에 매달려있던 것처럼 굽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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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는 어머니를 잃은 중국인 남성의 이야기도 소개했다. 어머니가 일본인과 재혼해 함께 일본 센다이로 넘어온 것이다. 그러나 일본어를 배우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남성은 일본어를 잘하지 못해 건물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러다 동일본대지진을 겪게 됐다. 지진을 감지한 동료들이 일단 산으로 뛰는 것을 보고 함께 가서 본인은 살았지만, 어머니는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아사히는 지진으로 희생당하는 등 직접적인 피해를 본 외국인 노동자도 있지만, 이후 피해 지역이 초토화가 되면서 대부분이 일자리를 잃는 등 이차적인 문제를 겪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앞선 중국인 남성의 경우 “일본인 배우자였던 어머니가 사망했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체류할 권한이 없다”며 입국관리국이 중국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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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저출산과 노동력 부족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막상 재난 방송은 외국인이 단번에 알아듣기 힘든 언어로 방송돼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진 발생으로부터 12년을 맞아 일본에서는 외국인 대상 재해 피난 스터디가 열리고, 재난 방송 개선 필요성을 제기하는 등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지난달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에서는 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중국, 베트남 노동자 등이 참여해 방송을 이해하고 쓰나미 대응법을 배우는 피난 스터디를 받았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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