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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트]스릴러를 떨어뜨렸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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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 공포에 무게 두지만 논리적 필연성 약해
안이한 스마트폰 해킹 대처, 흐릿한 범죄 목적
피해자 복합적 감정도 하나로 연결하지 못해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넷플릭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스마트폰 범죄를 다룬 스릴러다. 평범한 시민을 범죄로 끌어들이고 일상을 무너뜨린다. 김태준 감독은 미스터리 설정을 과감히 포기했다. 범인이 우준영(임시완)이란 사실을 초반에 밝히고, 피해자 이나미(천우희)와 가까워지는 과정을 그린다. 접근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이다. 우연을 가장한 스토킹으로 현실적 공포와 분노에 무게를 둔다.

[슬레이트]스릴러를 떨어뜨렸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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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특유 긴장감이 유발되려면 논리적 필연성과 당위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기반은 그다지 튼튼하지 않다. 우준영은 살인을 시도하기까지 이나미를 네 차례 마주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만남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스마트폰에서 이미 많은 정보를 습득한 터라 음험한 탐색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적 교류만 두드러져 박진감이나 조바심 생성을 저해한다. 후자에서는 작위성도 드러난다. 다음 만남에서 이나미와 절친 정은주(김예원)를 이간질할 걸 미리 알기라도 한 듯 조작한 명함을 건넨다. 그날 밤 정은주가 이나미 집을 찾아 하룻밤을 묵은 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부자연스러운 이야기에는 별다른 특이점도 없다. 크게 두 가지 요소에서 차별화에 실패했다. 이나미의 안이한 스마트폰 해킹 대처와 우준영의 흐릿한 목적성이다.


순진하고 어리숙한 피해자

초반 그려진 이나미는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는 현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동질감을 유발해 현실적 공포를 전하겠다는 야망이 엿보인다. 그런데 스마트폰 분실 뒤 이나미의 대응은 지극히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다. 잃어버린 스마트폰의 액정이 깨져 있고 이를 무상으로 수리받는데도 의심하는 눈초리가 전혀 없다. 며칠 뒤 우준영으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듣고도 그날을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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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평상시보다 배터리가 좀 빨리 닳고 그랬나요?" "어, 맞아요. 엄청나게 빨리 닳았어요." "이거 스파이웨어 깔린 거 맞네요." "그게 정확히 어떤 거예요? (…) 아, 근데 제가 최근에 뭐 설치하거나 한 게 없는데 어떻게 깔린 거예요?"


이나미는 우둔하기도 하다. 우준영이 정은주와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하는 거짓말의 허점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 "나미 씨 말대로 (스파이웨어를) 다운받은 흔적이 없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누군가가 나미 씨 폰에 몰래 직접 설치를 했다는 말이죠. 그리고 이 파일 자체도 위치 추적이랑 도청이 목적이라서 원격 조종은 못 하거든요." "무슨 말씀이신지…." 이나미는 원격조정을 할 수 없다는 말만 되뇐다. 정은주가 설사 일을 벌였더라도 굳이 스파이웨어를 깔 필요가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존재감 부족한 범죄자

우준영은 얼핏 보기에 교묘하고 치밀하다. 많은 사람을 살해하고도 꼬리를 밟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나미를 꾀어내는 과정은 대담하다 못해 노골적이다. 폐쇄회로(CC)TV 등을 신경 쓰지 않고 얼굴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이나미를 만나는 장소는 매번 같은 카페이고, 네 번째 만남에는 정은주도 함께한다. 의도대로 살인을 추가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용의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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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범죄를 저지른다면 그만한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우준영에게서 별다른 동기는 보이지 않는다. 금전이나 성적 쾌락에 무관심하다. 또 다른 범죄에 악용할 생각도 없다. 그저 반사회성 성격을 지닌 사이코패스다. 타인에게 전달되는 고통을 즐기기 바쁘다. 김태준 감독은 이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이유를 열거하지 않는다. 시청자가 사이코패스라고 유추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묘사한다. 편의적으로 빚어낸 배역에서 '추격자(2008)'의 지영민(하정우) 같은 존재감이 나올 리는 만무하다.


우준영은 살인을 시도하는 모습도 밋밋하다. 이나미가 수동적으로 요구를 따라줘서 시종일관 침착함을 유지한다. 절정에 배치되고도 스마트폰 해킹에 의한 피해만큼 긴장을 유발하지 못하는 이유다. 일련의 과정은 스마트폰 범죄에 대한 통찰로도 이어지지 않는다. 그저 여타 스릴러 영화가 보인 진부한 표현과 흐름을 반복할 뿐이다. 뒤늦게 내세우는 이나미의 능동성 회복은 탄력을 받을 리 없다. 아버지 이승우(박호산)가 볼모로 잡힌 모습을 보고 억눌리는 전개부터 부자연스러웠다.


여러 토막으로 잘린 복합 감정

아버지 자택의 욕실 신이다. 이나미는 창처럼 길고 뾰족한 도구를 들고 우준영을 공격하려 한다. 하지만 물이 담긴 욕조에 포박당한 아버지와 그의 목에 칼을 겨눈 우준영을 확인하고 찌르기를 주저한다. 이내 도구를 내려놓고 스스로 두 발목을 테이프로 묶는다. 그는 우준영이 수도를 틀어 아버지가 익사할 위기에 처하자 욕설을 퍼지르며 발악한다. "야, 이 X새끼야. 내가 죽여버릴 거야. 이 X새끼야." 우준영이 수도꼭지를 잠그고 아버지의 머리를 들어 올리자 절규는 애원으로 바뀐다.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시키는 대로 뭐든 할 테니까 아빠는 풀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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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는 분하고 억울하고 슬프고 못마땅한 얼굴을 모두 보여준다. 그런데 각각의 감정은 하나로 연결되지 않는다. 김 감독이 컷으로 잘게 쪼개서 편집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클로즈업 샷과 우준영 클로즈업·웨스트·바스트 샷을 사이사이에 끼워 넣어 흐름이 끊긴다. 복잡한 심경보다 개별적인 리액션 모음으로 나타난다.


'올드보이(2003)'에서 미도(강혜정)에게 비밀을 알리려는 이우진(유지태) 앞에서 용서와 협박을 오가는 오대수(최민식)와 대조적이다. 박찬욱 감독은 핸드헬드로 최민식의 연기에만 집중해 벼랑 끝에 몰린 남자의 최후를 효과적으로 전한다. "너! 머리털 끝부터 발톱까지 이 지구상 동서남북 어디서도 네 시체를 찾을 수 없을 거야. 왜? 내가 잘근잘근 씹어 먹을 테니까. 우진아. 이우진 씨! 내가 잘못했다. 내 이 말 취소한다. 제발, 취소해, 부탁이야."


'올드보이' 연출이 정답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때로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가 추구하는 방향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단조로운 서사와 비논리성까지 감싸기는 불가능하다. 그 소재가 모두에게 익숙한 스마트폰이라고 할지라도.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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