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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수시로 들리는 전투기 굉음'…美中 패권경쟁 최전선 된 오키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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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日 대리전 격전지로 부상
주민 72% 강력 반대에도 새 미군기지 건설 강행

[오키나와= 아시아경제 전진영 기자] "나는 정말 일본인 하기 싫다. 그렇게 전쟁하고 싶으면 당신들(일본 정부)이 하면 되지 않느냐."


지난달 27일 미군 기지 이전을 앞두고 공사가 한창인 오키나와 헤노코 해변. 공사 현장 앞에선 수십 명의 오키나와 주민들이 기지 건설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세계적인 휴양지이자 평화로운 섬으로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오키나와는 최근 미·중 간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 서게 되면서 전쟁 공포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미군에서 일본으로의 반환 50주년을 맞았음에도 여전히 2차 세계대전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일본 본토와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점도 오키나와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아시아의 화약고로 떠오르고 있는 오키나와를 찾아 주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헤노코 신기지 건설 현장에서 벌어지는 시위. 피켓에는 '신기지 반대'라고 써있다.

헤노코 신기지 건설 현장에서 벌어지는 시위. 피켓에는 '신기지 반대'라고 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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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이어지는 반대 시위

미군의 새 기지가 될 오키나와 헤노코 기지 공사장 앞에는 연일 ‘스와리코미’라 불리는 정좌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이날 방문한 기지 앞에는 수십 명 시민이 모여 "오키나와의 보물을 부수지 마라" "미군은 오키나와에서 떠나라" 등의 건설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규호’라고 부르는 소처럼 천천히 걷는 방법의 시위도 벌어졌다. 방문한 날에도 60대로 추정되는 한 여성이 ‘신기지 건설 반대’라는 피켓을 들고 토사를 운반하는 덤프트럭이 오가지 못하도록 공사장 앞을 천천히 왔다 갔다 걷는 중이었다.


주민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의 격전지가 됐던 오키나와의 과거사가 또다시 반복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오키나와가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응하기 위한 미일동맹의 새로운 전략적 요충지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은 신기지 건설을 위해 오키나와 헤노코의 바다를 메우고 있고, 일본 정부는 최근 오키나와에 자위대 배치와 무기고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도 이에 맞서는 군사 행동에 나서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사실상 오키나와가 미·중·일 3국의 ‘대리전’ 장소로 떠오른 것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21세기에도 화력전이 발생할 수 있음이 명확해지면서 오키나와 주민들에게는 아물지 않은 전쟁의 상처가 공포로 번지고 있다. 오키나와에서 만난 주민들은 2차대전 당시 유골 수습도 제대로 마무리 못 한 상황에서 새로운 미군 기지 건설이 이뤄지는 것에 대해 크게 반발했다. 특히 유사시 오키나와 주둔 병력의 대만 진출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오키나와 자체가 강대국 간 전쟁에 다시 희생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30분만 땅을 파도 유골 나오는데…강행되는 공사

니혼게이자이신문(니케이)에 따르면 지난 2019년 2월 오키나와현에서 진행한 주민투표에서 주민 72%가 신기지 건설을 반대했음에도 헤노코 미군 기지 건설은 강행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적합한 곳은 헤노코밖에 없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현재는 인근 산의 토사를 퍼내 컨베이어 벨트로 배에 실어 바다를 메우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아직 2차대전 당시 오키나와 희생자들의 유골조차 수습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 산을 허물어 바다에 파묻는 것에 주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현지에서 유골 발굴작업을 돕고 있는 단체인 가마후야의 구시켄 다카마쓰 대표는 "과거 폭격을 피해 사람들이 숨었을 만한 장소를 찾으면 유골이 나온다"며 모종삽과 호미를 들고 바위 밑을 파내려갔다. 불과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흩어진 뼈들이 발견됐다. 뼈를 살펴보던 구시켄 대표는 "아이의 대퇴부 뼈로 보인다. 폭격을 맞아 뼈가 흩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아이의 뼈는 군인이 아닌 민간인 희생자가 많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구시켄 다카마쓰 가마후야 대표가 바위틈에서 발견한 유골을 살피고 있다.

구시켄 다카마쓰 가마후야 대표가 바위틈에서 발견한 유골을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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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상흔은 오키나와 시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본 본토에 오키나와가 반환됐을 당시, 미군 기지를 남긴다는 조건 때문에 여전히 오키나와 하늘에서는 전투기가 수시로 뜬다. 후텐마 미군 공군 기지가 있는 오키나와 기노완시의 경우 공군 기지를 중심으로 민가가 둘러싼 형태로 도시가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이곳에서는 수시로 미 공군기가 하늘을 가르는 굉음이 들렸다.


주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이로 인해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고들이다. 오키나와의 활주로가 짧은 탓에 오키나와 기지에는 수직 이착륙기인 V-22 오스프리 전투기가 주로 배치돼 있는데, 사고가 잦아 미국과 일본에서 ‘과부 제조기’라는 악명이 따라다닌다. 실제로 2004년 미군 헬기가 오키나와 국제대학 건물에 추락하는 사고도 벌어졌다. 그러나 미군 헬기로 벌어진 사고기 때문에 일본 정부에는 조사권이 주어지지 않았고, 미군이 자체적으로 조사에 착수하고 사고를 마무리했다. 이 밖에 인근 보육원 천장에는 미군 헬기의 부품이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 지역이 ‘마요네즈 지반’이라고 불릴 정도로 무른 지반으로 매립에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며, 활주로를 건설해도 쓸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또 이 지역은 멸종 위기 바다 생물인 듀공의 서식처인데, 이번 공사가 생태계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방위력 증강으로 다시 감도는 전운
기노완시 평화의탑에서 보이는 후텐마 미군 공군 기지.

기노완시 평화의탑에서 보이는 후텐마 미군 공군 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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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에도 최근 일본 기시다 정권은 방위력 증강을 전면에 내걸며 오키나와의 군사력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일본 방위성은 중국·대만과 가까운 오키나와 인근 도서 지역에 무기고를 전면 배치할 계획을 세웠다. 이에 주민들은 비밀리에 전술핵무기 등 무기가 들어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과거 미군정 당시에도 미군의 핵병기가 오키나와 무기고에 비밀리에 반입된 적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등이 속한 난세이 제도에 계속해서 활주로와 항만 등을 건설할 계획이다. 미군뿐만 아니라 자위대 주둔지까지 함께 만들고 있다. 가뜩이나 군사력 배치로 긴장감이 높아진 가운데, 최근 중국의 심상치 않은 군사 행동에 주민들은 실제 충돌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마이니치 신문은 13일 지난해부터 오키나와 상공에 중국 무인기가 나타나 정찰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고 보도했다.


오키나와= 전진영 기자 jintonic@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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