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세요" 그 시절…'재벌집'에 나온 카드대란의 실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소재로 등장
당시 무리한 대출 완화가 신불자 양산
배드뱅크·개인파산 제도 성숙화 계기
한국의 현실 사건과 허구의 이야기를 교묘히 섞은 이야기로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킨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지난 18일 방송에서 이른바 '신용카드 대란'을 다뤄 재차 주목받았다. 드라마상에서 카드 대란은 주인공 진도준(송중기 분)이 사업 자금을 마련하는 발판으로 쓰였지만, 현실에선 한국 사회에 깊은 자상(刺傷)을 남긴 대형 금융 위기였다.
무리한 신용 대출이 만든 '카드 호황'
'재벌집 막내아들' 14화에서 진도준은 삼촌 진동기(조한철 분)에게 신용카드 기업 '순양카드'를 매각한다. 그러나 진도준이 막대한 수익을 내는 알짜배기 회사를 순순히 넘겨준 데에는 곧 한국 사회를 덮칠 카드 대란을 염두에 둔 뒷배경이 있었다. 얼마 후 대란으로 인해 순양카드의 연체금이 치솟자 진동기는 자금 4000억원을 빌려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고, 덕분에 진도준은 더욱 유리한 위치에서 지분 매각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 이야기의 배경으로 등장한 카드 대란은 실제로는 2002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금융 위기였다. 또한 평범한 가계도 자주 사용하는 신용카드인 만큼, 서민층에 가장 큰 피해를 줬다.
당시 한국은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정부는 2001년 소비 진작을 통한 내수경기 부양을 경제 회복 전략으로 내세웠고, 이를 위해 신용카드 관련 규제를 대거 완화했다. 현금서비스 최대 이용 한도를 풀고, 신용카드 사용 시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방식이었다.
이후 국내에선 신용카드 붐이 펼쳐졌다. 2002년 말 기준 신용카드 발급 규모가 사상 최초로 1억장을 돌파했다. 전 국민이 최소 2장 이상의 신용카드를 지녔다는 뜻이다. 카드사 또한 유례없는 호황 속에서 치열한 광고 경쟁을 펼쳤다. BC카드의 '부자 되세요' CF가 유행어로 떠오르기까지 했다.
연체금 치솟으며 신불자 양산…일가족 극단적 선택 비극까지
그러나 카드 호황이 위기로 변질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1년 말 당시 2.6%였던 신용카드 연체율은 불과 2년 만에 14%로 폭증했다. 연체율이 치솟자 정부는 가계부채 상승 속도를 억누르기 위해 카드 대출 규제를 강화했는데, 오히려 이런 조처로 인해 신용불량자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2000년 말 200만명이었던 신용불량자 수는 4년 뒤인 2004년 4월 380만명을 돌파했고, 이 가운데 약 60% 이상은 신용카드 관련 채무자로 나타났다.
연체금이 치솟으면서 그동안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 왔던 카드사들도 흔들렸다. 정부는 2003년 금융정책회의에서 '신용카드사 종합대책'을 수립, 카드사 자체 노력과 채권단을 통한 외부 자금 조달을 통해 시장을 정상화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때 많은 카드사가 은행에 흡수됐고, 민간 시장이 흡수할 수 없을 만큼 거대 규모의 부실이 드러난 LG카드에는 국책 산업은행의 공적 자금이 투입됐다.
금융업체들의 위기는 일단락났으나, 이미 수백만 명으로 불어난 신용불량자들은 긴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2003년 4월 딸이 진 억대 규모 카드빚을 비관하다가 60대 부친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벌어지는가 하면, 같은 해 7월 인천시 부평구 한 아파트에서는 남성이 딸과 아들을 창문 밖에 던진 뒤 자신도 뛰어내리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내 배드뱅크(신용 회복에 초점을 맞춘 구조조정 기관), 개인파산 제도 또한 이때 성숙했다.
카드 대란 이후 더 짙어진 韓 양극화 그림자
카드 대란은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에 짙은 그림자를 남기고 있다. 카드 대란의 여파가 진정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2008년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졌고,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의 인플레이션 급등이 겹치면서 서민층의 고통은 더욱 심화했다.
지난 7일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국내 자산 상위 20%와 하위 20%의 평균 자산 가치 격차는 64.0배를 기록,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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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주인공 진도준은 카드 대란 사건을 정리한 뒤 가난했던 전생의 삶을 떠올린다. 동생의 병원비를 구하지 못해 부친(이규회 분)이 고금리에 사채를 써 해결해야만 했던 기억이다. 진도준은 사채를 갚기 위해 직장 일과 대리운전 등 투잡을 뛰던 아버지를 회상하며 "부를 상속받은 나, 가난을 대물림받은 너. 우리는 같은 시간 같은 하늘 아래에서도 다른 세계를 산다"라고 독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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