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도, 스타일에서도 나이는 무관하고 태도는 중요하다

[시니어트렌드]나이 들수록 비싼 옷을 입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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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로부터 의복 정제를 중요시했다. 의복과 삶을 연결해 정성과 예를 다하며 동방예의지국을 지탱해왔다. 옷과 관련된 속담을 찾아보면 70여개가 훌쩍 넘는다. ‘마음씨가 고우면 옷 앞섶이 아문다’, ‘거지도 입어야 빌어먹는다’, ‘하루 굶은 것은 몰라도 헐벗은 것은 안다’까지 생활 전반을 다룬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어 사전에 따르면 ‘옷이 날개’라는 표현은 옷이 좋으면 사람이 돋보인다는 말이다.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의복을 중요시했는지 알 수 있는 말은 ‘의식주’다. 중국은 ‘식의주’라고 한다.


인구 규모로든, 경제력으로든 한국내 최고 집단인 우리 시니어들이 패션 시장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중년의 패션이란 생활 한복, 모노톤의 정장 아니면 알록달록한 등산복이 떠오르곤 했다. 최근 상황은 다르다. 시니어들은 백화점 매장의 특정 ‘부인복’이나 ‘신사복’ 대신 젊은 층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5060세대는 골프와 같은 활동을 위해 미니 주름스커트, 모자와 장갑 등의 소품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대학의 평생교육원들마다 경쟁적으로 시니어 패션모델 과정이 열리고, 중년 학생들이 몰린다. 시니어 모델 선발대회 프로그램도 생겨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중계를 대체했을 정도다.

새로운 시니어들은 더 이상 ‘노인다운’ 옷차림으로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젊게, 자유롭게, 스타일리시하게’ 산다. 연령대에 따라 특정한 브랜드들이 있었고, 나이대에 맞춰 옷을 입는 것이 매너이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2030세대가 즐겨 입는 옷을 7080세대가 입지 못할 이유가 없고, 그 반대도 일어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것이 어떤 스타일인가요?’만큼 ‘평생 들려면 어떤 가방이 좋을까요?’라는 질문이 흔해졌으니, 스타일리시하게 나이 들기는 전 세대의 관심사일 수도 있다. 20대를 주요 고객층으로 하는 쇼핑앱에서 70대 윤여정씨를 기용하며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며 편견을 깨고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가는 브랜드 가치관과 일치한다’는 보도자료를 냈을 정도니까 말이다.


시니어 패셔니스타들은 특징이 있다. 젊은 층의 패스트패션보다는 품질 좋은 원단과 넉넉한 재단을 선호한다. 몸에 편안하게 잘 맞는 것이 우선이고, 오래도록 아껴온 소품이 있고,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다. 유행을 걱정하지 않는다. 유튜버 밀라논나, 모델 김칠두는 시니어 패션 인플루언서들이다. 이들의 짧고, 긴 머리는 30년의 인생이 담겨 있다. 아들의 병 때문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밀라논나는 40대 중반부터 염색을 그만하기로 하고, 김칠두씨는 환갑의 나이에 재취업이 어려운데도 오래 길러온 수염을 자를 수 없어 모델 수업을 받게 된 사연들 말이다. 당당한 태도로 인해 이 자체로 멋스럽게 여겨진다. 시니어의 각각 차림새에도 이야기가 담겼다. 할아버지 패션 같다던 니트 조끼는 최근 BTS 멤버들이 입으면서 ‘그랜드파(할아버지) 스타일’로 알려졌을 뿐만아니라 보온성이 좋다고 호평받고 있다. 시니어들의 연륜이 묻어나는 자세와 느긋함에 젊은이들까지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고 한다.

패션 분야에서 신중년들의 활약이 눈부신 것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그래니 시크(Granny Chic)’의 대표 주자이자, 올해 101세가 된 세계 최고령 패션 아이콘, 멋쟁이 뉴욕 할머니 아이리스 아펠은 ‘패션에 나이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화려한 색과 깃털 의상, 뿔테 안경으로 유명한 그녀는 온갖 젊은 고객을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들과 협업을 한다. 대만인 창완지(83)·허슈어(84) 부부는 세탁소를 운영하는데, 고객들이 찾아가지 않는 옷 수백 벌을 어우러지게 맞춰입고 '원트쇼애즈영(@wantshowasyoung)'이란 사진 계정을 운영해 SNS 유명 인사가 되었다.


필자는 옷에 대한 용도를 고르자면, 몸을 보호하고 편안한 활동을 위한 것이라 생각해 실용적인 것을 최상이라 여긴다. ‘보여지는’ 시대에 자기 주관과 형편에 따라 맞는 옷차림을 하기란 쉽지 않지만, 밀라논나 선생의 말에 위로받는다. ‘진짜 멋쟁이’가 되려면 성숙한 내면, 자존감, 정서적 안정이 필요하며 옷을 잘입는 것은 취향과 안목, 교양이 드러나는 옷차림을 할 수 있을 때이고 이는 세월이 필요하다고. 그 사람만의 매력이 스타일에 오롯이 드러나려면 나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시니어가 유리한 측면이 있다.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란 책을 쓴 루이비통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출신 미레유 길리아노는 우아하게 나이 드는 비결은 ‘태도(attitude)’에 있다고 말했다. 이는 삶에 대한 태도라고 한다. 패션에 대한 해마다의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내면의 스타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꾸준히 가꿔가는 마음가짐이 품격 있는 스타일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노화를 가장 적게 걱정하는 국민이라는 말도 있다. 그들은 여든은 되어야 늙었다고 생각하며, 두려운 것은 노화가 아니라 매력을 잃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도 ‘의복’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인 만큼, 시니어 패션 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남에게 보여주는 스타일’보다 더 편안하고 자유로운 패션도 표현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삶에서도 스타일에서도 여전히 눈부신 멋쟁이 시니어들의 패션은, 아직 한창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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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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