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보류'…밀실로 넘어가는 예산심사
尹정부 주요 예산,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 무더기 보류
'속기록' 없는 소소위서 논의될 가능성 높아
"과거보다도 오히려 퇴행" 전문가 지적
예결위원들도 "바람직스럽지 않은 관행" 목소리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권현지 기자] "청와대 개방 관련 예산을 항목 하나하나 분리해서 심사하려니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 개방과 관련된 일체 안건은 보류해 놓고 나머지 항목을 심사하는 게 효율적인 것 같다."(이철규 국민의힘 예결위 간사)
"동의합니다."(의원 일동)
"청와대라고 하는 공간을 어떻게 가져갈거냐, 이게 (여야간에) 기본적으로 좀 합의도 좀 되고 방향이 설정되고 해야지."(우원식 예결위원장)
지난 18일 국회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예산소위) 현장.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을 심사하던 중 여당 간사인 이 의원의 목소리에 소위 위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동의를 표했다. 우 위원장도 공감했다. 현재 국회의 예산심사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다.
24일 현재 전체 상임위 예산의 절반을 살핀 예산소위에서 감액과 현상유지 등을 확정하지 못한 ‘보류’예산이 커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을 둘러싼 여야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다 보니 청와대 이전과 경찰국·소형원자로(SMR)등 주요 사업 및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업 예산의 심사 보류가 많다. 이들 예산 협상은 속기록이 남지 않는 소(小)소위로 넘어갈 공산이 커, 밀실 심사 우려는 커질 전망이다.
아시아경제가 전날까지 예산심사를 거친 사업을 파악한 결과 ‘경찰국 신설 관련 인건비(3억9400만원) 및 기본 경비(2억900만원)’를 비롯해 ‘디지털플랫폼 정부위원회 운영 지원(73억9500만원)’‘국민통합위원회 운영(117억6400만원)’‘정보보호 인프라 확충(375억4800만원)’‘디지털 플랫폼정부 국민체감 선도 프로젝트(103억5000만원)’‘i-SMR(소형모듈원전) 개발(31억1000만원)’ 등 윤석열 정부 주요 국정과제 관련 사업이 줄줄이 보류된 상태다. 정치적 논란이 된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37억6000만원)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용산 이전으로 인한 청와대 개발 사업은 통째 보류처리됐다. 청와대 미술전시 운영 사업(48억원),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운영(131억5000만원) 등이 대표적이다. 야당은 "미술품을 보러가기 위해 청와대 가는 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여당은 "청와대 내 미술전시가 처음은 아니지 않느냐"며 전 정부의 전시 이력 등을 언급하며 대립했다.
보류사업이 커지면서 올해도 비공식 협의체인 ‘소소위’ 가동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소소위는 여야 지도부와 예결위 간사 등이 참여하는데, 법에 규정된 공식 기구가 아니라 속기록이 남지 않는다. 이 때문에 깜깜이 심사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심사 마감을 일주일 정도 남기고 증액심사는 아직 시작도 안된 상황이라, 보류예산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심사과정에서 보류는 당연히 할 수 있지만, 보류된 사업은 2차 논의를 거치고 또 보류되면 3차 논의를 하는 게 원칙이어야 하는데 1차 논의에 그치고 비공식적인 협의 채널인 소소위로 넘어간다. 민감한 사안들은 간사들끼리 논의하라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 위원은 "과거에는 소위가 파행돼서 그랬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간사들끼리 협의를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말한다"면서 "이는 과거보다 오히려 퇴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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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결위원들은 이같은 따가운 시선을 인지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여당 예결위원은 소소위에서 ‘정치적 타협’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바람직스럽지 않은 관행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웬만큼 하면 서로 양해가 되고 이해가 되면 이걸 합의를 해서 넘겨야 되는데 그게 안 된다"고 토로했다.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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