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섭의 금융라이트]14년 전 '키코'가 재소환 된 이유
900여개 기업 3조 손실 유발했던 '키코'
국감에서 "최근 TRF 상품도 키코 빼닮아"
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이슈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2008년 9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민주당이 개최한 '환헤지 피해대책위원회 공청회'에 참석한 200여명의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키코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키코와 유사한 상품이 팔리고 있다.” 지난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키코(KIKO)’라는 말이 언급됐습니다. 은행들이 팔고 있는 ‘목표수익 조기상환 선물환(TRF)’이라는 상품이 우려스럽다는 건데요. 문제를 제기한 정무위 소속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2의 키코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키코란 무엇일까요?
키코는 2000년대 초반 출시된 외환파생상품이었습니다. 녹인(Knock-In)과 녹아웃(Knock-Out)의 앞글자를 따 키코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녹인은 미리 정한 조건이 ‘발동’된다는 뜻이고요. 녹아웃은 조건이 ‘소멸’된다는 뜻입니다. 만약 환율이 일정 범위에 있으면 미리 약속한 계약환율로 달러를 팔 수 있었죠.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제거할 수 있는 겁니다.
문제는 환율이 오르거나 내릴 때죠. 키코는 환율이 큰 폭으로 내릴 때 녹아웃 조건이 적용됩니다. 계약 자체가 무효화되죠. 반면 환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설 때 녹인이 이뤄집니다. 만기일 전에 한 번이라도 환율이 녹인 구간에 접어들면 기업은 계약금액의 두배 이상을 은행에 팔아야 했습니다. 기업이 얻는 이익은 한정돼있는데 부담해야 할 위험금액은 무한대에 달하는 초고위험 상품이었죠.
그럼에도 키코는 2007년 집중적으로 팔렸습니다. 환율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환차손을 피하고자 수출기업들이 주로 사들였습니다. 특히 환율변동에 대응할 방법이 없던 중소기업들이 키코를 집중적으로 매수했습니다. 환율이 엄청나게 상승할 일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당시 키코 상품을 판매하던 은행들도 안전함을 강조하고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키코가 문제를 일으킨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부터입니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로 국제금융시장이 흔들리게 된 것이죠. 외국인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선호하기 시작하면서 투자자금을 회수하자 환율이 치솟았습니다.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도 높은 환율이 수출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발언과 함께 고환율 정책을 이어나가자 1100원 수준이던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돌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기업들은 이익을 보게 되지만, 키코에 가입한 기업은 예외였죠. 예상보다 환율이 폭등하면서 녹인 구간에 접어들었고 은행에 막대한 돈을 지출해야 했습니다. 막강한 경쟁력을 자랑하던 중소기업 50여곳이 순식간에 줄도산했죠. 이후 크고 작은 900여개의 기업이 손해를 입었는데 피해규모만 3조원이 넘습니다.
이번 국감에서는 최근 많이 팔리고 있는 TRF가 키코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TRF는 키코처럼 환율변동위험을 헤지하는 금융상품입니다. 고객이익을 제한하고 계약이 조기 종결 된다는 특징이 있죠. 그 대신 가입기업은 통상적인 수준보다 높은 환율로 거래할 수 있고요. TRF 역시 변동성이 확대될수록 리스크가 커지는 구조입니다. 설계상 기업이 받는 손실은 무한대이고요. 이렇게 판매된 TRF는 2019년 이후 총 22조원에 달합니다.
이 의원은 “과거 키코는 비용이 발생함에도 비용이 없다는 환헤지 상품으로 팔아서 기업들에 막대한 피해를 줬는데 현재도 키코와 유사한 상품이 팔리고 있다”면서 “상품설명서를 보면 은행의 마진은 대고객 환율에 포함돼있으며 고객이 추가로 부담하는 수수료는 없다고 돼 있는데 이는 키코 때 노마진과 비슷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로 인해 소비자들은 비용이 없다고 오인할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다만 금융감독당국은 키코와 TRF는 본질적으로 다른 상품이라는 입장이다. 국감에 출석한 이복현 금감원장은 TRF 관련 질의에 “키코는 실제로 기초자산에 대한 익스포저가 없는 상태에서 투기목적으로 거래됐지만 TRF는 환 익스포저가 있는 상황에서 한도에서 거래된다”며 “레버리지 거래 못 하도록 해서 추가 레버리지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검은 월요일에 줍줍 하세요"…59만전자·400만닉...
이어 이 원장은 “금융기관이 수수료에 대해 적절히 고객에게 알렸는가에 대한 지적에 공감한다”면서 “상품 운영과 관련된 사항들을 점검하겠다”고 대답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