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 예대금리차 공시로 소비자가 얻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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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요즘에야 인터넷은행들까지 생기면서 은행도 여기저기 옮겨 다닌다고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주거래 은행은 좀체 바꾸지 않았다. 대학 캠퍼스 안에 있던 은행, 군 장병 시절 나라사랑카드를 발급받았던 은행, 첫 직장 월급을 넣어준 은행. 어쩌다 인연이 닿은 곳에 한 번 정착하면 10년, 20년을 쓰는 게 기본이었다. 결혼하고 '억' 소리 나는 아파트를 살 때쯤에야 금리 0.1% 따지며 옮겨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는, 은행은 딱 그만한 존재였다.


보통 사람들과 은행간의 일반적인 관계가 이렇게 형성된 이유는 '은행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인식 탓이다. 상품도, 금리도, 지점도. 간판만 다를 뿐 그 속은 같다고 생각해 굳이 비교하고 갈아탈 일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고정관념을 깰 계기가 생겼다. 인터넷에서 물건을 살 때 으레 거치는 '가격비교'처럼, 대출과 예금 금리를 한 화면에 보여주는 예대금리차 공시는 모든 은행이 다 똑같지 않다는 걸 증명했다.

우선 내가 자주 가는 A은행의 금리가 B은행과 C은행에 비해 낮은지 높은지 알 수 있게 됐다. 덤으로 금리의 행간까지 읽을 수 있게 됐다. 예대금리차가 가장 컸던 신한은행은 공시가 나자마자 "신용도가 낮은 취약계층에 연 15.9%의 금리로 대출해주는 햇살론을 은행권 최대 수준으로 공급한 결과"라며 해석을 붙였다. 인터넷은행 중에서 가장 예대금리차가 컸던 토스뱅크도 "중·저신용자 비율이 모든 은행 중 가장 높다"고 주석을 달았다. 누구 한 명 물어보지 않았는데 은행이 먼저 나서서 속사정을 이야기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겉은 예쁘지만 속은 신 레몬에 빗대, 중고차 시장의 판매자와 소비자 간 정보 비대칭 문제를 설명한 '레몬 시장' 이론이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 애컬로프 교수는 이 개념을 통해 "정보가 부족하면 효율적으로 자원이 배분되지 않아 시장 실패가 일어난다"고 했다. 그동안 금융 상품 정보를 은행이 독점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예대금리차 공시를 통해 사람들의 금융 생활이 과거와 사뭇 달라질 것이다. 몰랐던 정보를 얻게 되면서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가장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는 '최적탐색행위'가 은행 거래에서도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정보를 지렛대 삼아 얻은 게 한 가지 더 있다. 은행들의 금리 인하 조치다. 예대금리차 1등만은 피하자는 마음으로 은행들은 어느 때보다 대출금리를 경쟁적으로 떨어뜨리는 중이다. 금리인상기에 최대실적을 낸 은행들이 미운털 박히기 싫어 내놓는 대책들이다. 동시에 지금 같은 경기침체 우려에 이자 부담까지 늘어난 서민들의 발등에 불부터 끌 수 있는 조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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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층 대출을 많이 해줘서' '주택담보대출보다 신용대출 수요가 많아서' '고정금리 대출을 권유해서' 그 결과 평균 대출금리가 올라갔고 예대금리차가 커 보이는 착시효과가 생겼다는 은행들의 억울함은 금리 게재 방법을 합리적으로 고쳐서 풀어주면 될 일이다. 사람들이 은행은 다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예대금리차 공시는 제 몫을 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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