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김재형 대법관 ‘주심 사건’ 7월 기준 330건… 재판 지연 불가피
전원합의체도 잠정 중단 가능성… ‘미쓰비시 자산매각’ 결론도 지연

오석준 청문보고서 채택 지연… 대법원 ‘업무 공백’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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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허경준 기자] 김재형 대법관이 오는 4일 퇴임하는 가운데 김 대법관의 후임인 오석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연기되면서, 대법원 재판 공백 사태가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2일 법원 내부에서는 오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지연될 경우, 재판이 지연되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법원 재판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이 3개의 재판부에 4명씩 배치돼 사건을 심리하는 구조다. 각 재판부에서 심리하는 사건은 대법관 1명이 주심을 맡고 나머지 3명과 합의를 통해 결론을 낸다.


대법관이 퇴임하면 대법원장은 재판부의 구성과 사건 배당을 조정하는 사무분담을 할 수 있는데, 새 대법관이 임명돼야만 사무분담이 가능하다.

결국 오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으면, 김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모든 사건은 심리가 ‘중단’된다. 지난 7월 기준으로 김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사건은 330건에 달한다.


김 대법관이 맡은 대표적인 사건은 강제노역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93)에 대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측의 특허권 특별현금화(매각) 명령 재항고 사건이다. 이 사건은 김성주 할머니의 채권으로 설정된 미쓰비시의 특허권 2건을 매각할지를 다투는 내용으로, 대법원이 일제 강제노역 피해 배상을 위해 미쓰비시의 자산을 매각하라고 한 한국 법원 명령의 확정 여부에 관한 결론을 내야 한다.


대법원은 2018년 11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미쓰비시의 손해배상 책임을 확정했으나 미쓰비시 측은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2019년 법원은 미쓰비시가 갖고 있는 한국 내 상표권 2건과 특허권 6건을 압류하는 강제 절차를 결정했다. 미쓰비시 측은 압류 명령에 불복해 지난해 항고했으나 기각됐고, 대법원 역시 자산 압류 조치가 정당하다며 재항고를 기각했다.


대전지법은 지난해 9월 김성주·양금덕 할머니를 위한 총 5억여원 상당의 특허권·상표권 매각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미쓰비시는 이번에도 항고와 재항고를 해 사건은 올해 다시 대법원으로 넘어왔다.


오 후보자가 김 대법관의 주심 사건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도 있지만, 대법원장의 사무분담에 따라 다른 대법관이 미쓰비시 사건을 맡을 수도 있다. 다만 사건이 재배당돼 주심이 변경되면, 바뀐 주심이 사건을 파악하는데도 시간이 걸려 재판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지연될 경우, 김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사건만 재판 공백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원장을 포함한 13명의 대법관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운영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전원합의체는 찬성과 반대 입장이 같게 되는 가부동수(可否同數) 문제를 피하려고 홀수의 대법관이 참여해야 하는데, 김 대법관의 자리가 채워지지 않으면 전원합의체가 짝수가 돼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


법원 관계자는 "전원합의체는 열릴 수는 있지만, 결론을 못 내는 경우가 생겨 새 대법관이 온 이후에야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라며 "재판이 지연되는 문제가 가장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한편 김 대법관은 이날 퇴임식에서 "대법관을 보수 혹은 진보로 분류하여 어느 한쪽에 가두어 두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법관이 보수와 진보를 의식하게 되면 법이 무엇이고 정의는 무엇인지를 선언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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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저는 여전히 법적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제가 한 판결이 여러 의견을 검토해 최선을 다해 내린 타당한 결론이기를 바랄 뿐"이라고 지난 6년간 대법관 생활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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