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기업 이익 외면해선 안돼
치열한 로비 현장서 또다른 IRA 피해 없어야
[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 "제너럴모터스(GM) 노조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에 개입한 후 내용이 크게 달라졌다." 미국 의회에 정통한 취재원은 이렇게 말했다.
깜짝 놀랐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 보조금 지급에 대해 로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노조 차원에서 직접 로비에 나섰다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취재원의 말을 종합하면 IRA가 미국산 전기차가 아니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한 배경에 미 자동차 노조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왜 IRA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하는 내용이 담긴 것인지 이해가 됐다.
IRA에 포함된 전기차 보조금은 엎치락뒤치락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한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BBA)’ 법안이 처음 제시한 전기차 보조금은 최대 1만2500달러였다. 단, 조건이 붙었다. 노조가 있는 공장에서 생산된 전기차를 대상으로 했다. 전기차 보조금은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이 BBA에 반대하면서 요동쳤다. 자동차 회사당 보조금 지급 누적 판매 기준 20만대 제한·미국산·노조 등의 조건이 붙거나 사라졌다. 최종적으로 남은 조건은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량이었다. 결론은 미국과 일본 업체의 승리였다. 이미 보조금 제한을 넘긴 GM, 노조가 없는 테슬라, 맨친 의원의 지역구에서 하이브리드 차량을 제조하는 일본 도요타는 보조금을 더해 더 싼값에 차를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전기차 시장의 강자로 급부상한 현대차·기아는 십자포화를 당한 꼴이 됐다.
미국의 로비는 행정부보다는 의회를 향한다. 행정권이 강한 우리와 달리 미국은 의회의 권한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책을 만들고 의회는 법을 만든다. 정책과 법 중 어느 것이 바꾸기 어려울까. 당연히 법이다. 뒤늦게 우리 정부의 IRA 대응 정부 대표단이 미국을 방문해 봤자 미 측도 뾰족한 해법을 내놓기 어렵다.
미 의회의 입법 과정은 어느 나라보다도 복잡하다. 미국 법안은 최종 법제화 과정에서 자세한 내용이 뒤늦게 드러나곤 한다. 그러므로 더욱 많은 대비가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이 로비스트의 힘도 빌려야 한다. 우리 대기업들이 줄지어 워싱턴에 사무소를 개설하는 이유다.
한중 수교 후 30년간 우리 경제는 중국 경제 발전의 수혜를 봤다. 전 정부 시절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제는 달라졌다.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바이든 정부 출범 후 한미 관계의 중심이 안보에서 경제로 옮겨 가고 있다. 삼성, 현대, SK 등 우리 기업들도 줄지어 대미 투자 보따리를 열고 있다.
정부는 달라진 상황에 어떻게 대비했을까. 지난 정부는 BBA가 추진되는 과정에서도 임기 마지막까지 미국 내 교포들까지 동원해 미 정가에 종전선언을 설득하는 데 올인했다. 결과는 빈손이다. 윤석열 정부는 어떤가. 윤 대통령이 IRA 법안 하원 표결을 일주일여 앞두고 방한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나 우려를 전달할 기회가 있었지만 전화통화에 그쳤다.
지난 정부가 재외국민 보호를 최우선 순위에 뒀다면 윤 정부는 세계를 상대로 맹활약 중인 우리 기업을 지켜야 한다. 그게 국익을 지키는 길이다. 사후약방문식 처방은 더 이상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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