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이를 입양한 미국 부부가 아이의 발달장애 등 건강상태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입양기관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한국 아이를 입양한 미국 부부가 아이의 발달장애 등 건강상태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입양기관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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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는 11개월된 사랑스러운 한국 남자 아기입니다. 갸름한 얼굴로 귀여워 보입니다. (중략) 전반적인 발달이 나이에 적합합니다."(사회복지사의 추천)

2017년 12월 한국에서 태어난 훈이(가명)는 3주 만에 A 사회복지 법인에 맡겨졌다. 위탁모 가정에서 2년여간 지내던 훈이는 미국인 B씨 부부와 인연을 맺었다.


의료적 문제가 전혀 없는 아동을 원했던 부부는 1년여간 A 법인 및 소속 사회복지사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입양을 준비했다. 훈이의 사진과 의료기록등을 전달받은 부부는 훈이의 부모가 되기로 결심했고, 서울가정법원에서 입양 허가를 받은 뒤 2019년 11월7일 미국 윈스콘신으로 출국했다. A 법인엔 입양 수수료 등 명목으로 1만9500달러(당시 한화 약 2300만원)를 지급했다.

그런데 부부는 미국으로 데려온 훈이에게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었고, 잘 걷지 못해 자주 넘어졌다. 현지 검진 결과 언어발달 항목이 0점이었다. 근육 발달도 평균 속도에 한참 못 미쳤다. 검진 기관은 소견서에 "어떠한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고, 어떠한 단어도 말할 수 없다", "심각한 발달 장애가 우려된다"고 적었다.

◆입양기관·위탁모 "몰랐다. 속일 이유도 없다" vs 美부부 측 "어떻게 모를 수가"

부부의 항의에 A 법인은 "출생 병원에서 검사 오류가 발생해 재검 날짜를 잡았지만, 친모가 재검을 하지 않아 검사 결과가 빈칸으로 돼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만들어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메일을 보냈다. "위탁모는 위탁 경력 8년의 신뢰가는 보모"라고도 주장했다.


부부는 "훈이의 심각한 발달지연 및 청각장애 사실을 알고도 이를 방치했고, 위탁모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적절한 시기의 수술·치료를 놓쳐 심각한 발달지연 상태에 놓였다"고 A 법인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A 법인 측은 "정기적인 의료검사, 발달상황 검진 등을 통해 꾸준히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의료적 조치를 하는 등 보호의무를 했다"며 훈이의 장애를 고의로 숨기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위탁모도 법정에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훈이가 '엄마', '응' 같은 소리를 내며 반응했다",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전혀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며 자신은 훈이의 상태를 속일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찍은 영상도 법정에서 재생됐다. 영상 속 훈이는 계속하여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이름을 부르는 소리나 장난감 소리 등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법원 "알고도 방치했거나, 적어도 중대한 과실… 적절한 치료 기회 놓쳐"

26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재판장 김지숙 부장판사)는 훈이와 B씨 부부가 A 법인 등을 상대로 낸 총 2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최근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그러면서 A 법인이 훈이와 B씨 부부에게 각각 5000만원씩, 총 1억원 배상하라고 했다.


재판부는 "A 법인은 (훈이의) 심각한 발달지연 및 청각장애 사실을 알고도 방치했거나, 적어도 중대한 과실로 이를 발견하지 못해 적시에 필요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상실하도록 했다"며 "아무런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위탁모 증언 등도 믿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재생된 영상을 보면) 통상적인 발달 단계와 비교할 때 언어 능력이 부족하고 발음도 불분명한 것으로 보인다"며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발달지연 및 청각장애 등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A 법인이 주기적으로 실시했다는 문진도 실제 발달상황 및 신체 건강 상태를 반영하지 못하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신체·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이 발생하고 상당한 비용이 소요될 것이 분명하다"며 "A 법인은 형식적인 사과 메일을 몇 차례 발송했을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원고들의 고통과 손해가 확대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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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훈이는 인공달팽이관을 이식하는 인공와우수술을 받고, B씨 부부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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