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 갈림길의 한국경제, 한은의 선택은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최근 ‘우리 경제가 위기에 직면할 것인가’에 관해 한국은행 고위 임원과 대화를 나누던 중 오래전 영화 한 편이 소환됐다. 외환위기였던 1997년 당시 국가부도 위기를 일주일 앞두고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2018년 개봉작 <국가부도의 날>이다. 영화 속에선 한국이 곧 엄청난 경제 위기에 직면하리라는 것을 예견한 한은 통화정책팀장의 고군분투와 위기를 기회로 삼는 투자가, 회사·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가장의 상황이 교차하는데,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실화 같은 구성으로 화제가 됐다. 한은 고위 임원은 "가족과 영화를 봤는데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질 때까지 상영관을 나올 수가 없었다"면서 "중앙은행 구성원으로서 위기를 적극 예견하지 못했던 부끄러움이 앞섰다"고 회고했다. <관련기사> '시험대 오른 한은'
41년 만에 최고치를 찍은 물가로 쇼크에 빠진 미국에서 재무장관과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공개 사과가 이어지고 있다. 이달 초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뒤늦게 정책 실기를 인정했다. 그는 지난해 내내 미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일시적이라고 주장했지만 미 소비자물가가 8%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오판을 시인한 것이다. 옐런 장관은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이 지난해 2월부터 "유동성이 미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며 대책 마련을 촉구해왔지만 그의 주장을 반박해왔다.
제롬 파월 Fed 의장 역시 인플레이션에 대해 과소평가했다면서 의회에 출석해 사과했다. 알리안츠 고문이자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 핌코의 전 최고경영자(CEO)였던 모하메드 엘 에리언은 지난해부터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는 Fed의 판단은 ‘역대급 오판’이라며, 현재도 Fed는 여전히 시장에 뒤처져 있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 못지 않게 우리나라의 물가 상황도 심상치 않다. 6월 24년 만에 6%대 물가 상승률을 기록한 데 이어 시장에서는 오는 10월 7%대 벽도 깨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해 우크라이나 사태, 중국 봉쇄 등 변수가 등장하면서 한은의 물가 전망도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8년 앨런 그린스펀은 ‘아무도 위기를 보지 못한’ 이유에 대해 훗날 위험 신호가 약한 것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색 코뿔소가 온다> 저자 미셸 부커는 "위험 신호가 약해서가 아니라, 위험 신호에 주의를 기울이고 기꺼이 대응하려는 의지가 없었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위험의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간과해 결국 큰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려면 신호의 상태나 강도 못지 않게 그 신호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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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창립 72주년 기념사에서 "현시점에서 한국의 대응이 선제적이라고 볼 수 없다"며 '인플레 파이터'로서 중앙은행 역할을 강조했다. 세계 각 중앙은행은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미 통화 긴축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오는 13일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예상되는 가운데 한은이 현 물가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전망을 바탕으로 인플레와 경기침체 갈림길에 선 한국 경제에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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