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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미래] ⑬ "실핏줄 골목길 주민이 살아야 동네가 산다"

최종수정 2022.05.31 09:02 기사입력 2022.05.31 08:05

‘영원한 유산’ 심윤경 작가 인터뷰…"현실과 조화를 이루는 맥박이 뛰는 곳이었으면"

왼쪽 뒷편으로 보이는 서양식 건물이 벽수산장이다. 1966년에 불에 탔고, 1973년에 철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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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소설 ‘영원한 유산’(문학동네)의 심윤경 작가는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만 사십 년을 산 토박이다. 10여 년간 삶이 흘러가는 대로 잠시 서촌을 떠났지만, 연어가 귀소하듯이 서촌으로 회귀했다. 어릴 적 온종일 헤매도 늘 새로운 길과 조우하게 되는 서촌의 촘촘한 골목길은 심 작가에게 마치 실핏줄과도 같은 설렘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유산’에서 심 작가는 과거 친일파 윤덕영의 별장이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한국통일부흥위원단의 청사로 쓰인 ‘벽수산장’을 중심으로 “이념의 밀물과 썰물 속에서 정직과 존엄을 지키려 애썼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등장인물은 허구지만 실제 역사적 배경과 장소를 담은 소설을 통해 서촌을 조명한 심 작가. 그런 그를 5월27일 서촌의 어느 카페에서 마주했다.

심윤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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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영원한 유산’은 벽수산장을 배경으로 어릴 적 찍은 사진이 발단이 된 것으로 안다. 그만큼 서촌에 오래 거주했는데. 오랜 주민으로서 서촌이 지닌 특색을 소개하자면.

▲50년 생애 중 40년을 서촌 주민으로 살았다. 서촌은 우리나라의 긴 역사와 현재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함께 모인 소박한 동네다. 여기서 ‘소박한’이 중요하다. 북촌은 당당한 세도가들이 사는 곳이었다면 서촌은 예로부터 서민과 중산층의 거주지였다. 그 분위기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특유의 실용적이고 조촐하면서도 아름다움 멋이 있는 곳이다.


- 볼거리도 많은 것 같다.

▲서촌은 동네 산책하면서 앞길만 지나가도 예쁜 곳이다. 거기서 보는 인왕산이 참 예쁘다. 인왕산 수성동 계곡이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아파트를 없애 아름다운 계곡이 고스란히 드러난 신기한 장소이다. 예쁜 골목들을 살살 걸어보시라고 하고 싶다. 그게 진짜 서촌이다. 평생 산 저도 아직 이 골목이 이리로 나오네 하는 곳이 많다. 최근에는 새롭게 청와대가 동네 명물로 급부상했다. 셔틀버스 기다리는 줄이 엄청 길다.


- 이처럼 서촌에는 많은 유산과 볼거리가 있는데, 유독 벽수산장을 소재로 삼았던 이유가 무엇인가.

▲봉준호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말한 “가장 개인적인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와 가장 부합하는 예일 것 같다. 벽수산장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살았다가 마흔두 살에 그런 곳이 있다는 걸 처음 알고 깜짝 놀랐다. 서촌에서 한평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내가 그 큰 소동을 까맣게 모르고 살았다니 굉장한 충격이었다. 역사적인 의미만으로는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이것이 나의 일이고 내 앞마당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할 때 급한 마음으로 써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 돌 사진에 찍힌 벽수산장이 사진 찍은 후 사흘 뒤에 철거됐다. 그 건물을 정치적인 구호의 소설에 박제하고 싶지 않아서 굉장히 오랫동안 저 자신의 이야기이자 서민의 이야기로 구상했다.

- 소설에 “그런 것이 존재했다고 증언해줄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져 그것이 실제 있었다고 말할 근거조차 희박해지는 것들”이란 글귀가 나온다. 희미해졌거나. 없어질 법하거나, 관심이 필요한 서촌의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뭐든 있을 때는 소중함을 눈치채지 못한다. 1950년대 순화병원 사진을 보면 건물이 굉장히 크다. 하지만 지금은 있었는지조차 아는 이가 적다. 추사 김정희 선생 집에 있었다고 하는 백송(白松)도 어느 날 벼락을 맞아 쓰러지고 지금은 자리만 남았다. 시간을 이길 수 있는 건 없다, 하나씩 사라져 간다. 이처럼 서촌의 상징인 골목길도 사라져가고 있다. 비좁은 골목에 사는 거주민의 불편도 알고, 넓혀야 할 것을 넓히는 것도 맞는데, 어느 때는 제 한 조각이 사라진 것처럼 철렁할 때가 있다.


- 서촌에 사는 불편함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

▲서촌은 굉장히 오랜 시간 개발제한에 걸려있었다. 여러 변화의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그게 이 동네의 특성인 것 같다. 함부로 뭔가를 바꿔서는 안 될 것 같은…. 심지어 지금도 도시가스가 닿지 않는 곳이 많다. 주차난은 말할 것도 없다. 거주자가 줄어들고 고령화되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 인구가 줄어서 골목이 비어간다. 학원도 많지 않다 보니 아이 교육을 위해 신도시로 이주하는 분들도 많다.


- 서촌을 관광지화하려는 시도가 많은 것 같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 가면 마을을 작은 박물관화한 곳이 있다. 아마 역사성을 보존하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텐데 마치 박제된 생물을 보는 스산함이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옛 모습만 남은…. 서촌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그런 모습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껍데기만 남기는 게 다가 아니다. 현실과 조화를 이루는 맥박이 뛰는 곳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주민이 편안하게 아름다움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 벽수산장처럼 존재했으나 이제는 부재하는 것들이 있는 반면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서촌의 변화상에 관한 개인적 느낌이 궁금하다.

▲낡아서 삭아가는 집들이 많지만, 서촌의 정취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1인 가구 공방 등을 새로 차리기도 한다. 카페를 여는 분들도 꽤 많다. 아직은 마을이 지닌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버티고 있는 것 같다. 한옥 게스트하우스처럼 기존 분위기를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활기를 유지할 수 있는 지원책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 최근 청와대가 개방된 것도 변화거리 중 하나다. 일련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나.

▲서촌의 가장 큰 장점은 고즈넉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난 20년은 시위 등으로 가장 소란스러운 동네가 되어버렸다. 이번에 나라에 큰 변화가 있으니 그런 분위기도 조금은 좀 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 책에서 “내가 사는 동네는 언제나 그런 격동의 멍석이 되었다. 한쪽의 목소리가 광장을 뒤덮으면 또 다른 쪽의 목소리가 밀려온다”고 했다. 피로감이 컸을 것 같다. 또한 역사의 흐름을 가깝게 느꼈을 것도 같다. 이젠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옮겨가면서 멍석의 역할에서 벗어날 것 같은데.

제가 어릴 적은 시위와 최루탄의 시대였다. 서울역, 을지로, 광화문, 명동 등 구도심이 시위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광화문과 서촌으로 압축되더니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이 동네 사람 생활 습관은 날씨 예보 보듯 시위 예보를 보는 것이다. (시위로 대중교통이) 무정차 통과하지는 않을까, (경찰이) 철벽을 쳐서 아이가 하교하기 어렵지는 않을까, 정말 힘들었다. 광우병 사태 때는 출퇴근이 투쟁이었다. 차벽 밑을 굴러서 귀가했던 적도 있다. 서촌은 역사적으로 굉장히 피곤한 역할을 감당했다. 이제는 그런 정치 중심지에서 벗어나 원래의 조용한 마을로 돌아갔으면 한다.


- 거주 불편에도 불구하고 서촌을 다시 찾은 이유는.

▲서촌을 잠시 떠났을 때도 마음의 일부분은 항상 여기 있었던 것 같다. 다른 곳은 임시 거주자 같은 느낌이었다. 영혼을 파묻어 둔 지역이다. 청와대와 경복궁, 인왕산은 서촌의 삼대 축이다. 그것 사이의 공간이 서촌이고 그것들이 주고받는 케미가 있다. 전통과 근현대, 자연 모두가 조화롭다.


- 서촌이 변화했으면 하는 기대 상(像)이 있을까.

▲제가 바라는 서촌은 주민들이 살기 편한 곳이다. 그러기 위해선 규제보다 지원이 많아져야 한다. 관광이 지자체의 주요 수입원이기는 하지만 지자체나 관광부처에서 주민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 같다. 2014~2016년 중국 관광객이 서촌을 휩쓸었을 때 학교와 도서관을 없애고 그 자리에 관광호텔이나 대형음식점을 짓자는 논의가 있었다. 주민 반대가 극심했는데, 중국에 한한령(限韓令)이 일면서 대형정책이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종로구와 관광주체는 자꾸만 대형시설을 구상하는데 그건 서촌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골목 안 작은 게스트하우스가 더 요긴하다. 지금 서촌의 주민 대다수는 투쟁으로 버틴, 서촌을 몹시 사랑하는 이들이다.


- 차기작은 무얼 준비하고 있나. 또 서촌이 배경이 될까.

▲서촌을 배경으로 ‘나의 아름다운 정원’(한겨레출판), ‘영원한 유산’(문학동네)을 썼다. 오는 7월에 첫 에세이집을 출간하는데 아마 거기에 서촌 이야기가 담길 것 같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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