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 유출…낙태권에 美사회 발칵 뒤집혔다(종합)
대법원 판결문 초안 유출
낙태권 인정판례 뒤집을 듯
바이든, 비판 성명 발표
"女 선택권은 근본 권리"
중간선거 정치쟁점 부상
[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조현의 기자] 미국 사회가 사상 초유의 연방대법원 판결문 초안 유출로 발칵 뒤집혔다. 여성의 낙태권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하며 찬반 시위가 벌어지는가하면, 이례적으로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나서서 강도 높은 비판 메시지를 내놨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쟁점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전례 없는 초안 유출에 연방수사국(FBI)도 조사에 나섰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여성의 선택할 권리는 근본적 권리라고 믿는다"며 미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초안을 마련한 것을 비판했다. 그는 "로 판결은 이 땅에서 50년간 유지돼 왔다"며 "법의 기본적 공평함과 안정성 측면에서 (판결은) 뒤집혀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삼권 분립이 엄격한 미국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 같은 성명을 발표하는 것 자체가 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쟁점으로 번진 낙태권 보장
낙태권은 미국에서 이념 성향에 따라 찬반이 갈리는 대표적 쟁점이다. 만약 연방대법원이 의견서를 받아들여 낙태권에 대한 권리 보장을 철회할 경우 미국은 주별로 낙태 금지 여부와 제한 기준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보도 직후 미국 사회에서는 낙태권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대법원 인근에는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낙태권을 옹호하는 미국가족계획연맹은 성명을 통해 판결문 초안의 내용은 끔찍하고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낙태 금지를 찬성해온 미국생명연합은 "낙태 판례를 폐지하는 대법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들은 이번 논란이 중간선거 표심에 영향을 미칠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이례적 성명을 통해 민주당 지지를 호소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여당인 민주당은 낙태권 보장 입법도 시사했다. 다만 공화당은 이를 필리버스터 등으로 무력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CNN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의 69%가 낙태권 보장 판결을 뒤집는 것을 반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자체 조사에서는 55%가 낙태 합법화에 손을 들었다.
사상 초유 유출에 "범인 색출"
낙태권 보장 여부도 뜨거운 감자지만 유출 자체도 심각한 문제로 손꼽힌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에서 대법관의 내부 논의 내용이 정식 발표 전 외부로 유출된 것은 미국의 현대 법원 역사에서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연방대법원은 즉각 유출자 색출에 나섰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날 "이번 일은 법원과 직원에 대한 모욕이자 신뢰를 손상하는 극악무도한 일"이라며 유출 조사를 지시했다. 그러면서도 초안이 최종 결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유출 조사는 연방수사국(FBI)을 포함해 전면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미 대법원은 그간 내부 논의에 대해 철통 보안을 지켜 왔다. 하지만 내부 관계자가 민감한 사안에 대한 논의 내용을 유출하면서 대법원에 대한 신뢰도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됐다. 미 정치매체 더힐은 "법원 역사상 가장 놀라운 비밀 유지 위반"이라며 "판사들 사이에 불신을 심어주고 법원의 명성을 손상시킬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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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유출자가 밝혀진다 하더라도 별다른 처벌 규정이 없다. 기밀을 공개하는 것이 불법이 될 수 있지만 내부 문건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범죄인지는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스티븐 블라덱 텍사스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수사를 안 할 수는 없지만 특정 범죄로 기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의 기자 hone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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