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을 봤다. 여러 종류의 청소년 범죄는 물론이고 촉법소년 이슈, 교육-입시 시스템까지 아우른 의욕과 주제의식에 대한 진심에 박수를 보낸다.
10화까지 이어지는 드라마를 보다보면 여러 질문과 고민이 생긴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야할까? 가정폭력에서 가해자 피해자 분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할까? 청소년 쉼터라는 중간적 기구는 어떻게 운영되어야 할까? 이런 구체적인 고민들과 함께 더 근원적인 질문도 떠오른다. 이를테면, 교화와 처벌 어느 쪽에 힘을 싣는 것이 옳은가? 성악설과 VS 성선설? 청소년범죄의 책임은 아이와 부모만의 책임일까? 다른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게 내리기 어렵지만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볼까 한다.
‘혼외출생율’이라는 지표가 있다. 전체 출생율에서 혼외출생이 차지하는 비율인데, 우리나라는 OECD 가입 국가들 중에서 압도적으로 낮다. 결혼한 부부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보다 혼외출생이 더 흔한 스웨덴을 비롯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절반을 넘나드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겨우 2% 안팎이다.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이것은 자랑스러운 수치일까? 자, 이 수치는 전체 출생율과 함께 놓고 봐야 그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작년 우리나라의 출생율은 0.81명. 세계 최하 수준이고 평균의 절반밖에 안 된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참 많이들 한다. 오죽 무책임했으면 결혼도 안한 것들이 애를 낳았겠어? 부모라는 사람들이 애가 있는데도 지들끼리 싫어졌다고 그냥 헤어져? 엄마도 (아빠도) 없는 애가 제대로 가정교육을 받았겠어? 애가 잘못하는 건 다 부모 책임이야. 애를 잘 키울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낳지를 말아야지!
심호흡 몇 번 하고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이런 말들이 정말 이 시대에 합당할까? 혼인을 통해 법적으로 인정받은 부모가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다면 제일 좋다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다만, 이 시대가 그러기 쉬운 시대인가? 예전에 더 힘들고 가난한 시대에도 다 결혼하고 아이를 몇 명씩 낳고 부모가 희생하며 아이들을 키웠는데 왜 징징 대냐고 젊은이들을 다그쳐야 할 일인가? 출산과 양육과 교육에 대해 부모의 희생을 당연하게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국가의 발전을 위해 개인의 인권이 희생되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시절처럼 말이다. 더 나아가, 비정상적으로 낮은 출생율은 비정상적으로 낮은 혼외출생율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드마라 '소년심판'을 보다보면 법정에 앉아있는 부모들이 자주 나온다. 그들은 죄지은 아이들보다 더 죄인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청소년범죄의 책임은 다 부모의 책임일까? 그 책임을 질 자신이 없으며 아예 아이를 낳을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할까? 아니면, 어떤 환경에서 아이들이 태어나든 일단 태어난 아이가 최대한 비슷한 혜택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와 시스템이 앞장서서 차별과 학대를 막아야할까?
어제 너무나도 당연했던 것들이 오늘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결혼, 출산, 양육, 교육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뭔가 바뀌지 않으면 얼마 안 있어 이 땅은 노인들로 가득해질 테니까. 오늘 칼럼에는 유독 물음표가 많지만, 마지막 문장만큼은 확실히 마침표로 끝낼 수 있다. 소년이 없는 땅에는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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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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