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중 난입해 "전쟁 멈춰라" 외쳐
수천명 체포됐지만 시위 멈추지 않아
전 CIA 요원 "푸틴, 실각 위협 두려워 해"
"러시아 국민 봉기하면 더 위험해질 수도"

러시아 국영 채널 '채널원' 뉴스에 난입한 한 여성 / 사진=CNN 방송 캡처

러시아 국영 채널 '채널원' 뉴스에 난입한 한 여성 / 사진=CNN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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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선동·선전을 믿지 마십시오. 그들은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 채널 '채널원' 저녁 뉴스 생방송이 진행되던 중 한 여성이 '전쟁 반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촬영 현장에 난입했다. 이 여성의 이름은 마리나 옵샨니코바로, 채널원의 직원이었다. 옵샨니코바는 난입 시위 이후 즉각 러시아 당국에 구금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대대적으로 침공한 뒤, 러시아 내에서도 반전(反戰)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시민들은 광장에 모이거나 돌발 1인 시위를 하며 끊임없이 저항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실각 이후 다른 누군가에게 살해당할 가능성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자국민은 물론 우크라이나에도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수천명 잡혀가도…러시아서 들끓는 "전쟁 반대" 시위


옵샨니코바는 난입 시위 직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서 그는 "아버지는 우크라이나인이고 어머니는 러시아인"이라며 "불행히도 지난 몇 년간 나는 '채널원'에서 일하며 크렘린궁(러시아 정부)의 선전을 도왔다. 부끄럽다"라고 폭로했다.


이어 "TV 화면에서 거짓말을 하도록, 러시아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도록 한 게 부끄럽다"라며 "이 모든 게 시작된 2014년(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우리가 침묵한 게 부끄럽다. 크렘린궁이 나발니(러시아 야당 지도자)를 독살하려 할 때 시위에 나서지 않았고, 이 모든 반인간적인 체제를 지켜보기만 했다. 이제 세계가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옵샨니코바는 지난 14일 채널원 방송 현장에 난입해 전쟁 반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그가 "전쟁 반대! 전쟁을 멈춰라"라고 육성을 외치는 소리가 전파를 탔다.


지난달 24일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 푸시킨 광장에서 열린 반전 집회 참가자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4일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 푸시킨 광장에서 열린 반전 집회 참가자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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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송 사고 이후 옵샨니코바는 즉각 구금됐다. 방송사 채널원과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은 이후 성명을 내고 "한 외부 여성이 침입해 사건이 발생했다. 내부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최근 발효된 '가짜뉴스법'을 통해 러시아군에 대한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자에게 최대 징역 15년형에 처할 수 있다.


러시아 당국이 시민들을 강경 진압하고 있지만, 반전 목소리를 높이는 시민들의 움직임은 가라앉지 않았다. 영 매체 '가디언'에 따르면 침공이 시작된 지난달 24일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 주요 도시에서는 잇따라 반전 시위가 벌어졌다.


전쟁을 규탄하는 각계 성명도 이어지고 있다. 6000여명이 넘는 의료계 종사자들, 건축가 엔지니어 3400여명, 교사 500여명은 공동 명의로 성명을 내고 전쟁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유명 인사들도 반전 메시지를 내고 있다. 국제 테니스 대회 'US오픈'에서 우승한 러시아인 다니엘 메드베데프는 한 인터뷰에서 "테니스 선수로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 봤고, 모든 곳의 평화를 원하게 됐다"며 "(러시아군의 침공 소식을) 듣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러시아 국민 가수 발레리 멜라제 또한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 이번 사건은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나, 제발 전쟁을 오늘 당장 멈춰달라"라고 호소했다.


시민들은 자신의 생명과 자유를 걸고 정부에 반대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반전 시위를 하는 이들이 보이는 즉시 잡아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반전 시민단체 'OVD-인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단 3일 동안 '전쟁 반대 집회'에 나섰다가 체포된 이들만 3039명에 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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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혹해지는 푸틴…"국가 통제력 상실 무서워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왜 시민들을 탄압하면서까지 전쟁을 강행할까. 전문가들은 그가 '실패한 독재자의 말로'를 걷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추측한다.


미국 정보국인 CIA에서 34년 넘게 근무한 베테랑 첩보원 '더글라스 런던'은 미 매체 'CNN'에 기고한 오피니언에서 "오랫동안 러시아를 지켜 보아온 정보 전문가로서, 나는 그(푸틴 대통령)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푸틴의 동기는 자신이 느끼는 위협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 위협에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자신이 파멸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런던은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지난 2011년, 자신의 고향인 시르테 인근 하수구에서 생포된 직후 사망한 사건이 푸틴 대통령에게 '공포'로 각인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카다피는 당시 자국민들에게 조롱당하다가 살해됐는데, 이를 두고 런던은 "푸틴의 최악의 악몽"이라고 말했다. 즉,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국민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 실각하는 것을 가장 무서워한다는 뜻이다.


런던은 "거리의 반전 시위 격화는 국내에서 푸틴의 힘을 약화할 것"이라며 "러시아 국민이 '봉기를 해도 잃을 게 없다'고 느끼고 일어선다면 푸틴에게는 심각한 장기적 고려 사항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자신이 곤경에 처한 것을 깨닫게 되고,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고 느꼈을 때 (푸틴은) 더욱 무섭고 위험해진다"라며 "러시아가 이 게임(전쟁)에서 끔찍한 결과를 낼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푸틴 건강 이상설'의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디언', '텔레그래프' 등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서방국가의 러시아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최근 들어 "지속적으로 특정한 망상을 가지는 등 편집증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이같은 편집증은 치매, 파키슨병 등으로 인한 질환일 수 있으며, 이 때문에 푸틴 대통령의 판단력이 눈에 띄게 저하됐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교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양측 지도부는 종전 협상을 진행 중이다. 15일에는 4차 협상이 약 6시간에 걸쳐 이뤄졌으며, 아직 '근본적인 입장차'가 있으나 타협의 여지가 조금씩 확보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우크라이나 측 협상 대표단을 이끄는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고문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매우 어렵고 끈질긴 협상 과정"이라면서도 "근본적인 모순은 있지만, 확실히 타협의 여지가 있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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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르 조보크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 또한 "러시아와의 협상이 좀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됐다"라며 "러시아 측은 더이상 우크라이나에 항복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라고 전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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