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공정’이 자본시장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주요 정당 후보들이 발표한 자본시장 공약의 대부분이 불공정하거나 불공정해 보이는 게임의 룰을 공정하게 만드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후보들은 대주주 vs 개인, 전문(외국인, 기관) vs 개인 투자자 간 차별 요인을 최대한 없애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겠다고 앞다퉈 공언했다. 주식 개인투자자가 1000만 명에 이르고, 주식 계좌 수가 6000만 개에 육박해 공정 확보책은 개미들 표심 확보를 위해 반드시 내놓아야 하는 정책이 됐다.
후보들은 주식시장의 문제로 지적돼 온 공매도의 기회 불평등, 기업 분할에 따른 개미들 피해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후보 별로 대책이 서로 차이를 보이지만, 해당 이슈에 대해 공정을 확보하겠다는 정책 목표는 같다. 또 개인 투자자들의 거래 비용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한 쪽은 거래세를, 다른 쪽은 주식 양도세 도입 취소를 주장하고 있다. 게임의 룰이 공정한 시장이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데 이의를 달 이는 없다. 하지만 표심을 얻으려는 선거 전략으로 공정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자본시장의 핵심으로 꼽히는 효율과 수월성 확보는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른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핀테크, 자율주행, 양자컴퓨터, 신재생에너지 등 4차 산업의 기술 우위와 산업 육성을 놓고 국가 간 업종 간 경쟁이 치열하다. 중요한 시기에 혁신 기업에 피와 같은 자금을 공급하는 자본시장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자금 공급 기능의 수월성 확보를 자본시장의 핵심 정책 목표로 내세우는 후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전략적 접근보다는 최근 자본시장에서 문제가 된 불공정 사안들에 대한 땜질식 처방들만 내 놓는 듯한 모양새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던 금융허브, 글로벌투자은행(IB) 등 자본시장의 산업적 육성을 얘기하는 이도 없다.
지나치게 공정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자본시장의 핵심 경쟁력인 효율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이 어떤 기업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겪은 황당한 사례를 전했다. 한국거래소(KRX) 상장심사 위원인 어느 대학 교수가 해당 기업이 2대 주주와 맺은 주주간계약(SPA)을 문제 삼았다. SPA의 내용이 개인들 피해를 초래하지 않는 일반적인 내용인데 개미들 입장에서 보면 불공정 요소라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4차 산업 혁신 기업의 대부분이 사모투자펀드(PE) 또는 벤처캐피탈(VC)을 2대 또는 3대 주주로 두고 있다. 상장 전에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기관 투자자들과 SPA를 체결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SPA 자체로 문제가 되면 이들 기업이 상장 문턱을 두드리는 과정에서 계속 공정성 시비를 벌여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지나친 공정성 시비가 혁신 기업의 자금 조달과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해당 기업이 상장을 포기하면 개미들은 혁신 기업에 대한 투자 기회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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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에서 공정이라는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불공정해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착각하는 것들 중에 시장의 효율을 위해 필요한 제도와 시스템들이 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선의 결과가 어떻게 결론 나던지 새 정부는 공정 프레임으로 자본시장의 효율을 갉아먹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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