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 지금은 운동을 시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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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졌다. 산책하러 가려던 기분이 절로 움츠러든다. 두 해 동안, 코로나 팬데믹 탓에 운동이 저절로 줄었다. 업무도 집에서 주로 처리하고, 강의도 회의도 거의 화상으로 하다 보니 방안 생활자가 된 기분이다.


읽는 일 말고는 즐거움을 못 느끼는 마음이 자꾸 몸을 방구석에 붙잡아 둔다. 어떤 날은 종일 바깥 공기를 못 쐬는 날까지 생겼다. 건강이 염려된다고 어머니 잔소리가 커졌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산책이라도 하려고 애쓰지만, ‘집콕’에 익숙해진 마음은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숱한 핑계를 찾는다. 이래도 괜찮을까?

앨리슨 벡델은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그래픽노블 작가다.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연재형 만화 장르와 달리, 서양 그래픽노블은 강한 완결성을 갖춘 단행본으로 출판돼 만화와 문학의 중간 예술 장르로 흔히 인식된다. 벡델은 ‘천재들의 상’이라는 맥아더 지니어스 펠로십을 비롯해 람다 문학상, 스톤월 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21세기 초반 미국 문학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작가다. 대표작 『펀 홈』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각색되어 토니상 5개 부문을 석권하기도 했다.


최근에 출간한 자전적 그래픽 노블 『초인적 힘의 비밀』에 따르면, 벡델은 운동광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벡델은 “여자아이를 위한 스포츠”가 하나도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환갑 나이에 이른 최근까지 달리기, 마라톤, 스키, 하이킹, 등산, 캠핑, 가라테, 피트니스, 요가, 자전거 등 수십 가지 운동에 빠져들었다. 벡델은 말한다. “난 60년간 새로 생겨난 운동이란 운동은 거의 다 해봤어.”

벡델에 따르면, 운동해야 하는 이유는 반드시 신체 건강 때문만은 아니다. 운동은 인간의 정신, 감정, 심리 등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초월적 경험까지 가져다준다. 벡델이 운동에 몰두한 이유는 “육체의 고행 없이 자신이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운동은 우리 마음의 공허를 채워 주고, 불안을 완화하며, 자신감과 충족감을 불어넣는다. 심지어 운동은 “초인적 힘”을 가져다줄 것 같은 환상을 우리에게 일으킨다.


작품은 벡델 자신의 다양한 운동 경험을 통해 우리를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온갖 운동 열풍 속으로 데려간다. 덕분에 우리는 1960년대 텔레비전 쇼에서 까만색 표범 무늬 운동복을 입고 스트레칭을 하는 여성과 팔굽혀펴기를 하는 남성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숲속을 걸으면서 박새가 손에서 먹이를 먹도록 훈련하는 산책 명상까지 운동이 인간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다루어왔는지를 살필 수 있다. 헬스와 레저 관련 장비의 발전사를 들여다보는 재미는 덤이다.


운동에 관한 벡델의 첫 번째 깨달음은 “몸은 만들 수 있고, 운동은 ‘열정’과 ‘활력’을 준다는 점”이다. 운동은 우리에게 운명대로 살지 않는 법을 깨닫게 한다. 행동을 통해 근육이 몸 안에서 자라면서 신체가 더 강하고 단단하게 단련되는 느낌은 우리의 삶 전체를 고양하는 원동력도 된다. 신체 형태를 자기 힘으로 형성하는 경험은 바라는 대로 인생을 꾸려 갈 수 있다는 용기를 우리에게 일으킨다.

운동은 흔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했을 때의 도취감”을 가져오고, 이 느낌은 약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도전 의식을 불러온다. 벡델한테 운동은 여성을 둘러싼 고정관념과 사회적 한계를 거부하는 행동이자 약자에 대한 폭력이 난무하는 위협적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무기를 마련하는 일이다. “몸으로 하는 활동은 뭐든지 깨달음을 주는 듯해. 탭 댄스, 장대 던지기, 리프트 등의 활동은 내가 했던 온갖 운동 기술뿐 아니라 모든 도전에 기초가 되었어.” 남성이라고 다를 리 없다.


또 운동은 자연에서 떨어져 나와 소외된 인간을 전체로 되돌리고, 신체와 단절되어 병들어 버린 마음을 치유한다. 운동은 콘크리트 도시에서 번아웃에 빠져 불안과 우울에 고통받는 현대인을 구원한다. 캠핑과 하이킹은 자연과 하나 되는 경험을 통해 지극한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단체 운동은 “움직이고 숨 쉬면서 다 같이 무아지경에 빠져 하나가 되는 경험”을 통해 깊은 소속감을 돌려준다. 아울러 “지구력, 유연함, 균형감, 속도, 조정력을 기르는 운동”을 통해 우리는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게 흔들리는 마음이 나락에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는다. “마음이 조용해지고 몸이 그 자리를 차지할 때” 생겨나는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유산소 운동으로 취한 상태”는 인간에게 “우주의 본질을 느끼”는 경험도 가져온다. 운동에 동반되는 극한 고통은 자주 강렬한 기쁨으로 이어진다. 마라톤 선수들은 이를 ‘러너스 하이’라고 한다. 움직일 수 없을 정도까지 자신을 몰아갈 때, 뇌가 힘들고 지친 몸을 달래려 쾌감의 호르몬을 분비하는 현상이다. 마음의 괴로움은 인간을 망치지만, 운동의 고통은 인간을 황홀경에 빠뜨린다. 달리기 중독자인 소설가 조이스 캐럴 오츠는 말한다. “정신은 육체와 함께 달아나고, 뇌의 맥동, 다리의 리듬, 팔의 흔들림 속에서 신비로운 언어의 꽃이 만개해 고동치는 것 같다.”


초월 경험은 인간에게 정신적 자유를 주고, 그 안에서 새로운 자아를 탄생시킨다. 운동의 기쁨은 종교적 깨달음의 희열이나 예술의 숭고 경험과 똑같은 작용을 한다. 나와 너, 주체와 객체, 인간과 자연 등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자아가 우주 속으로 녹아드는 듯한 절정의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러나 벡델은 초월적 힘에 중독돼 자신을 끝없이 몰아가는 걸 경계한다. 운동 중독은 마음과 몸을 파괴할 수 있다. 아무리 애써도 우리는 지구에 붙잡혀 있고, 강하게 단련한 신체도 결국 죽음에 붙잡힌다. 운동은 우리를 더 나은 인간으로 바꾸나, 이 세상을 초월하게 만들진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은 초월이 아니라 생명의 유일한 터전인 여기 이곳을 더 낫게 가꾸는 것뿐이다. 건강한 신체는 그 일을 잘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다. “지질한 우리 자신조차 변화시킬 수 없다면 세상을 변화시킬 희망이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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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은 인간의 이기적 활동이 결국 인간 자신한테도 커다란 고통이 된다는 걸 선명히 드러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운동을 시작할 때다. 우리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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