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동일기능-동일규제를 넘어서 동일 안전망으로
최근 대형 정보기술업체들의 금융서비스 제공이 활발해지면서 동일기능-동일규제 원칙이 부각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전통적 금융회사들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 규제와 감독도 동일한 수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규제와 감독의 중요성은 금융안전망이라는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와 감독, 나아가 금융안전망의 필요성은 금융중개행위에 내재된 고유한 불안정성에서 비롯된다. 대표적 금융기관인 은행은 예금이라는 단기부채를 대출이라는 장기자산으로 운용한다는 점에서 만기불일치로 인한 유동성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어떤 이유로 단기부채 보유자(예금자)들의 대규모 상환요구가 나타날 경우, 이로 인한 은행의 유동성 위기는 금융시스템 전반의 불안으로 확산될 수 있다. 이러한 뱅크런 상황에서 은행에 대한 긴급 자금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이며, 예금자들의 갑작스런 인출요구를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예금보험제도이다. 이러한 중앙은행과 예금보험기구의 역할은 규제·감독과 더불어 금융안전망을 구성하는 필수적 요소들이다.
금융의 역사는 새로운 금융혁신에 대해 적절한 규제와 금융안전망의 도입이 지체되어 발생한 금융위기의 역사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우 19세기 중반 자유은행 시대에 민간은행들의 은행권 남발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63년 전국은행법 제정을 통해 민간은행권 발행을 사실상 금지했는데, 이러한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은행들의 노력은 요구불예금의 활성화라는 금융 혁신으로 귀결되었다. 요구불예금이라는 단기부채의 기능은 이전 자유은행 시대의 민간은행권과 동일했기 때문에 내재된 위험도 동일했으나, 이에 대한 규제와 안전망의 미비는 수차례의 금융패닉과 뱅크런을 야기했고, 결국 20세기초 연방준비은행의 설립과 연방예금보험공사의 출범을 통해 해결됐다.
유사한 사례는 반복된다. 수십년 이후 금융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은행과 유사한 중개기능을 수행하지만 은행에 대한 규제체계에서 벗어나있는 그림자금융, 즉 비은행금융중개가 출현했다. 형태상으로는 은행예금과 다르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의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RP(환매조건부채권),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등의 단기부채로 자금을 조달하여 MBS(주택저당증권) 등의 장기자산에 투자하는 금융중개행위가 성장하였다. 이후 주택시장이 침체로 접어들면서 자본시장의 단기부채 보유자들이 만기연장을 거부하고 상환을 요구함으로써 촉발된 것이 바로 2008년의 금융위기였다.
요컨대 2008년의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유는 동일한 기능에 대해 동일한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었고, 위기대응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는 동일한 기능에 대해 동일한 안전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은행 위주로 편제되어 있던 당시의 금융안전망 하에서, 연준은 비은행부문에 대한 자금지원을 위해 별도의 대출기구를 설립하는 등 편법과 탈법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연방예보는 예금보험제도의 밖에 있던 비예금부채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채무보증 프로그램 등의 비상대책을 시행해야 했다.
위기 이후 비은행금융중개에 대한 규제는 강화되었지만, 안전망은 여전히 미흡하다. 금융개혁 과정에서 구제금융 반대 정서 등으로 인해 비은행부문에 대한 중앙은행의 자금지원 권한은 오히려 약화되었고, 비예금단기부채에 대한 예금보험기구의 지급보증도 제한적으로만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은행부문에 대한 예금보험기구의 사전적 자금지원 기능은 사실상 없다.
게다가 최근 진행중인 일련의 금융혁신은 추가적인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예금과 유사한 선불충전금을 통해 지급결제서비스에 참여하고 있으며, 해외의 가상자산발행자들은 예금과 유사한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을 확대하고 있다. 동일기능에 대한 동일규제와 동일안전망이라는 원칙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얼마전 미국의 대통령 자문기구가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를 은행으로 한정하고(동일규제), 예금보험제도 안으로 편입시키는(동일안전망) 방안을 제안한 것은 바로 이러한 취지를 반영한다.
은행예금에 대한 사전적 보호, 유사시 비예금단기부채에 대한 지급보증, 빅테크업체의 선불충전금과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보호 등은 모두 동일기능에 대한 동일 안전망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이들 모두는 금융중개행위에 수반되는 단기부채의 불안정성에 대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예금보험기구의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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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일섭 예금보험공사 예금보험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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