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대비 현저히 낮은 국내 M&A…'인수합병은 성장 발판' 인식 떨어져
해외엔 없는 지주사 지분규제 등 M&A 걸림돌 많아 생태계 조성 취약
[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한국 기업들이 해외 주요국 기업보다 인수합병(M&A)이 크게 뒤처지는 것은 M&A를 산업 성장의 측면이 아닌 ‘구조조정’ 등으로 간주해 각종 규제로 가로막힌 영향이 크다. 해외 주요 기업들이 활발한 M&A를 통해 외형을 확장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사이 국내 기업들은 정부 지원은커녕 규제에 발목이 잡혀 시대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등 세계 주요국이 최근 글로벌 기업들의 M&A를 막아서는 등 진입장벽을 높이는 것도 불리한 요인으로 꼽힌다. 갈수록 높아지는 반기업 규제와 글로벌 인수 장벽 등 이중고에 시달리는 한국 기업들의 고민도 커지는 모습이다.
◇‘M&A는 구조조정’… 과거에 발목잡힌 韓= 한국이 지난 10년 간 M&A 시장에서 주요 5개국(미국·일본·프랑스·독일·영국) 평균(2598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063건을 기록한 것은 국내의 M&A 규제나 관련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해외 기업들의 경우 자국 내에서 활발한 M&A를 거친 뒤 몸집을 키우고 이후 글로벌 대형 M&A 시장에 적극 뛰어들어 성장 동력을 확보했지만 한국은 이 같은 토대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10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상장법인의 기업 M&A 체결 건수는 총 141건에 불과했다. 전년(121건)보다 증가했지만 최근 5년 간 120~140건 안팎에 머물며 횡보했다. 그나마 대부분 계열사 간 거래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5년 간 이뤄진 국내 M&A 대부분 계열사 거래 비중이 높아 전체의 50%를 차지했다. 4차 산업시대에서 M&A가 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업종 간 M&A가 보다 활성화돼야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의미다.
M&A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선 자본은 물론, 시장 참여자에 대한 개방이 보다 활성화돼야 하지만 이 역시 글로벌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내 기업들이 정부에 꾸준히 제도 개선을 요청했지만 여론 눈치보기 끝에 2020년 말이 돼서야 일반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허용하는 공정거래법이 개정됐다.
지주회사의 계열 편입규제로 인해 지분매입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점도 M&A 활성화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사례가 SK 의 메디슨 인수 포기다. SK 는 2010년 의욕적으로 인수를 추진하던 의료장비업체 메디슨 인수를 포기했다. 공정거래법상 비상장 자회사의 경우 40%이상 지분을 보유해야 하는데 당시 주주갈등 등으로 지분 확보가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12년이 흐른 현재도 M&A 환경은 녹록지 않다. 아시아나항공 M&A를 추진 중인 대한항공 은 공정위의 주요노선 반납 조건에 막혀 기업 결합을 통한 재도약 비전이 오히려 노선 반납으로 인한 경쟁력 저하 위기로 이어질 위기에 놓인 상태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제도팀장은 "해외에는 지주사의 (손)자회사 지분율 규제가 없지만 한국만 강력한 규제가 적용된다"며 "M&A를 구조조정이 아닌 기업과 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스타트업의 동반 성장으로 인식하고 이를 통한 제도적 보완 및 손질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美·EU, 반도체·첨단산업 문 걸어잠근다= ‘한국이 국내외에서 더딘 M&A 행보를 보이는 사이 미국과 EU는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에 대한 M&A를 잇달아 방어하며 패권 경쟁을 본격화했다.
‘세기의 딜’로 불린 미국 엔비디아의 영국 ARM 인수합병은 발표 1년 반 만에 결국 원점으로 돌아갔다. 미국과 영국, EU 주요 당국의 반독점 규제 칼날에 부딪히면서다. 대만의 글로벌웨이퍼스가 독일 실트로닉을 인수하려던 계획도 지난달 독일 정부가 끝내 승인을 거부하면서 백지화됐다.
주요국들은 반도체 분야를 비롯한 첨단산업 육성을 국가 안보와 동일시하며 자국 기업에 대한 인수를 막아서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유럽이 각각 반도체 분야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는 법안을 내놓으면서 자국 첨단산업 육성 경쟁에 불이 붙은 상황이다.
올해 ‘의미 있는’ M&A를 예고한 삼성전자 를 비롯한 국내 주요 기업도 해외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 는 약 120조원 규모의 현금 실탄을 발판으로 시스템반도체나 전장사업 M&A를 추진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각국이 반독점 규제와 기술 안보를 이유로 문을 걸어잠그면서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해외 기업의 자국 기업 M&A에 대한 각국의 규제는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며 " 삼성전자 를 비롯한 국내 기업의 초대형 M&A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중소형·혁신 신생기업 등에 대한 인수 등으로 시야를 넓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혜영 기자 he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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