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딸깍발이] 시대의 지성 이어령 박사 “걱정마. 나 절대로 안 죽어”
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주여, 내가 저들과 똑같은 숫자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쓰게 하소서." - 19세기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 曰
얼핏 오만의 말처럼 들리지만 이어령 박사는 "인간은 다 그래야 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떼’로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이유. "그놈이 그놈이 아니라 유일한 놈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실로 그의 삶은 그러했다. 193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문학박사, 문학평론가의 자격으로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역임했고,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을 두루 거치며 시대의 기록자를 자처했다.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을 주관해 그 유명한 굴렁쇠 소년을 연출했고,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한국예술종합원(한예종)도 그의 작품이다. 문화부 장관 시절 농림부와 동자부(동력자원부)가 문화부에만 전문학교 특권을 준다고 들고 일어났을 당시 국무회의에서 5분 연설로 갈등을 무마했다. "천재가 있으면 특별 교육을 시켜야 한다. 특권이 아니다. 오히려 불쌍한 아이들이다. (중략) 예술가들은 그 재능 빼면 세상 못 산다. 아무것도 못해 범죄자가 되고 만다." 그렇게 한예종이 탄생했고, 이어령 박사는 그 학생들을 "five minute kids(5분 동안 태어난 아이들)"이라 부른다.
그에게 타인의 인정은 중요치 않았다. "일 자체의 재미"가 중요했기에 88올림픽 개폐회식 역시 돈 한 푼 받지 않고 도맡았다. 그는 무늬가 없는 무문석(無紋席)이 무늬가 있는 화문석(花紋席)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점을 거론하며 "화문석은 짜는 과정에서 무늬 넣을 기대감이 생기고 자기가 신이 나서 짜지만 무문석은 오로지 완성을 위한 지루한 노동이다. 변화가 없으니 더 힘들다"고 설명한다.
그에게 인생은 목마름 그 자체였다. 희곡, 소설, 시를 두루 섭렵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이뤄냈지만 항상 "정상에 오를 만하면 갈증을 남겨두고 길을 떠났다." 왜냐고? "올라가면 끝이 나는 것이니까." 일평생 그에게 갈증은 삶의 원동력이었고 쾌락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그에게 "행복은 완벽한 글 하나를 쓰는 것"이었으나 그게 안 돼 쓰고 또 썼다고 술회한다. "나 또한 완성할 수 없으니 행복에 닿을 수 없다"며 "그저 끝없이 쓰는 것이 행복인 동시에 갈증이고 쾌락이고 고통이다. 어쩌면 고통이 목적이 돼버린 셈"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의 삶은 외로웠다. "같이 할 제자, 스승,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교수실에 모이면 다들 바둑, 정치 아니면 스캔들 이야기"로 분주했고, "조금 심각한 주제를 말하면 왕따를 당했다." 강의실은 늘 초만원을 이뤘지만 스승의 날 꽃을 들고 찾아오는 이는 드물었고 그게 늘 "섭섭하고 외로웠다."
암 투병 중인 그는 묵묵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새벽에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깨는 게 아내에게 미안해 소파에서 자는 생활을 하는 요즘, 가족들과 오해를 푸는 시간을 자주 갖고 있다. 먼저 보낸 딸을 생각할 때 "살아 있을 때 그 말을 해줄 걸"이라는 후회가 계속 남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아들의 뒤늦은 고백을 들을 수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사다주신 야구 글러브가 왼손잡이용(아들은 오른손잡이임)이었노라고. "아버지가 알면 미안해할까 봐 말도 못 하고, 보면 얼른 바꿔 끼고 그랬"노라고. 선생은 "미안함과 결벽증 같은 것. 피는 못 속여. 우리 집안 사람들은 다 그렇다"고 전한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건 오래전 숙명여대에서 강연을 하고 나오던 참에 주차장에서 선생을 기다리던 여학생이다. 오랜 시간 추위에 떨어 얼굴이 파래져서는 "선생님 돌아가시면 안 돼요"라고 했던 아이. 당시에는 "죽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내 맘대로 하나?"라고 차갑게 대꾸했다.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단다. "아마 내 책을 읽고 나를 좋아하게 됐고, 한 존재에 깊이 의지하면 ‘이 사람이 이 세계에서 사라지면 어쩌나’ 더럭 겁이 난다"는 사실을. 다시 만나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단다.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엄마 안 죽어"라고 자녀를 위로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그때 그렇게 매정하게 떠나는 게 아니었다"고…. "걱정하지 마. 나 절대로 안 죽어"라고….
열림원 출판사 관계자는 "김지수 기자님이 이어령 선생님을 인터뷰한 기사에 어떤 청년이 자살하려다가 마음을 돌렸다는 댓글을 달았다. 선생님이 그걸 보시고 마음이 동하셨고 이후 김지수 기자님께 먼저 제안을 해 심층 인터뷰가 이뤄져 책으로 나오게 됐다"며 "지금껏 4만7000부가량이 나갔다. 기대보다 독자 반응이 빨라서 놀랐다. 이어령 선생님도 좋아하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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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이제 월급이 1000만원" 역대 최고…'반도...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지음 | 열림원 | 1만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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