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프레임", "마녀사냥" 서울대 일부 교수들 주장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게 누군가?" 시민들 비난 들끓어
전문가 "법, 임금 문제 떠나 상식 어긋나는 행위"

서울대 교기.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갑질은 없었다'는 취지의 일부 교수 반박 글을 두고 시민들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서울대 교기.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갑질은 없었다'는 취지의 일부 교수 반박 글을 두고 시민들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을 두고 '갑질은 없었다'는 취지의 서울대 일부 교수들의 반박 글이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마녀사냥식으로 갑질 프레임을 씌우는 불미스러운 일", "서울대 명예를 훼손했다" 등 노동자 사망 관련 진상규명이나 진심 어린 사과보단 해명에 급급한 모습이다.


전문가는 미화 업무와 무관한 필기시험 등이 행해진 것 자체가 비상식적인 갑질이라고 지적했다.

청소노동자 이모(59)씨는 지난달 26일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는 이날 낮 동안 휴식하다 숨진 것으로 추정되며, 평소 지병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노조)과 유가족은 이씨가 그동안 과도한 업무와 직장 갑질을 겪어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이씨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기숙사에서 대형 100L 쓰레기봉투를 매일 6~7개씩 직접 날라야 했고, 4층짜리 건물을 혼자 청소하는 등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 또 청소노동자를 관리하는 팀장은 이씨가 근무한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 또는 한문으로 쓰게 하는 필기시험을 치르게 하고, 회의에 참석 시 '드레스 코드'를 요구하는 등 불필요한 지시를 했다.

이와 관련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자, 서울대 일부 교수들은 직접 반박하는 글을 올려 해명에 나섰다.


구민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난 9일 페이스북에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게 역겹다"라며 "고인은 업무 필기시험에서도 1등을 했고, 드레스코드 조치에 대해서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한 일방적 주장만으로 또 한 명의 무기계약직 노동자인 '중간 관리자'(팀장)를 가해자로 만들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구 교수는 이 같은 시험을 치른 이유에 대해선 "유학생이 많아 현장 근로자들이 외국인을 응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험은 2차례 이루어졌는데 일부 어려워하는 분들이 있어 더 이상 시행하지 않았다"라며 "눈에 뭐가 씌면 세상이 다 자기가 바라보고 싶은 대로만 보인다지만, 일이 이렇게 흘러가는 걸 보면 자괴감이 든다. 언론과 정치권과 노조 눈치만 봐야 한다는 사실에 서울대 구성원으로서 모욕감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 7일 '서울대학교 청소 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이 청소 노동자가 본 시험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7일 '서울대학교 청소 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이 청소 노동자가 본 시험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또 서울대 기획시설부관장인 남성현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도 10일 관악생활관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노조 측이 이 안타까운 사건을 악용하여 근무환경이 열악하다거나 직장 내 갑질이 있었다는 등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라며 "서울대 전체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관리자를 마녀 사냥식으로 갑질 프레임을 씌우는 불미스러운 일이 진행되고 있어 우려가 크다"라며 "안타깝고 슬픈 사고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관리자를 억지로 가해자로 둔갑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해명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보이나, 이는 오히려 시민들의 분노를 들끓게 했다. 노동자 사망과 관련 진심 어린 사과나 재발 방지책을 내놓기는커녕 자신들을 향한 비난을 막기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누리꾼들 사이에선 "피해자 코스프레를 지금 누가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하던 노동자가 죽었는데 자신들은 잘못 없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는 게 대한민국 최고 대학 교수들의 말" 등 비난이 쏟아졌다.


서울대 측의 해명을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20대 직장인 김모씨는 "애초에 청소노동자들이 유학생을 위해서 외국어나 한자를 왜 배워야 하나"라며 "유학생, 교환학생 자격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이면 기본적인 한글 정도는 그들이 알아야 맞는 거다. 말 같지도 않은 해명"라고 꼬집었다


논란이 확산하자, 구 교수는 문제의 글을 삭제하고 "'피해자 코스프레가 역겹다'는 부분은 정치권을 두고 한 말"이라며 "당연히 유족분들이나 다른 청소 노동자분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 구 교수는 12일 학생처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다만 "사실관계가 채 확인되기도 전에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제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청소 노동자 사망 관련 고인이 근무하던 925동 여학생 기숙사 앞에 붙은 추모글./사진=연합뉴스

서울대 청소 노동자 사망 관련 고인이 근무하던 925동 여학생 기숙사 앞에 붙은 추모글./사진=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교수들의 입장과 관련 민주노총은 '고인을 두 번 죽인 망언'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11일 입장문을 내고 "공동체와 약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 채 내뱉는 발언"이라며 "구 교수의 주장은 개인이 아니라 서울대의 소위 권력 있는 자들과 일군 세력들이 갖는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수용 가능한 다양한 생각 중 하나가 아니라, 용납 안 되는 2차 가해이고 명백한 폭력"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는 청소 노동자에게 미화 업무와 무관한 필기시험 등이 행해진 것 자체가 비상식적인 갑질이라고 지적했다.


김효신 노무사(소나무노동법률사무소)는 "안전해야 할 일터에서 발생한 죽음으로 비로소 미화 직에 종사하는 분들이 속으로만 삭여왔던 부조리함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이를 두고 최고 지성인들 모였다는 서울대에서 '프레임으로 몰고간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며 시민들은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AD

이어 "미화 노동자에 대한 평가는 청결도 등 관련 업무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지 시험 등을 보는 것은 기죽이기밖에 되지 않는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환복해야하는 불합리함을 만든 것 자체도 잘못"이라며 "이번 문제는 법이나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는 등을 논하는 것을 떠나 기본적인 예의와 상식이 지켜지지 않은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