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촛불 정부'도 밀어내지 못한 관피아
금융공기관 수장에 관료들 줄줄이 낙하산
6년간 금융기관 근무한 전직 관료 200여명
文 "낙하산 인사 없도록 하겠다" 공염불로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과거 정부의 적폐에 실망한 국민들의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며 출범한 현 정부도 관피아 앞에선 '바람 앞 촛불' 신세에 불과한 모양입니다."
연말 금융권이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으로 떠들썩하다. 최근 임기가 만료된 금융공기업과 유관기관장 자리가 줄줄이 '관' 출신들로 채워지고 있어서다. 손해보험협회장에 선임된 정지원 전 거래소 이사장(행정고시 27회),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을 지낸 유광열 SGI서울보증 사장(행시 29회), 퇴임 한 달여 만에 거래소 이사장으로 내정된 손병두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행시 33회) 등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 전 이사장은 1986년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금융위 상임위원(1급)을 지낸 정통 관료 출신이다. 공직을 떠난 후 기재부 출신 공무원 1급이 갈 수 있는 요직 중 하나로 분류되는 한국증권금융 사장을 거쳐 자본시장 상위 공기관인 거래소 이사장을 맡았고, 이번엔 손보협회장 자리까지 꿰찼다. 관 출신이 금융 유관기관장 세 자리를 연속으로 맡는 것은 1970년대 이후 처음이다. 이달 초 SGI서울보증 사장직에 오른 유 전 수석부원장은 기재부를 거쳐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장,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금감원 수석부원장 등을 지냈다. 거래소 이사장에 내정된 손 전 부위원장은 기재부와 금융위 요직을 두루 거쳐 지난해 5월부터 금융위 부위원장을 지내다 지난달 초 퇴임했다.
아직 공모 절차가 진행 중인 금융유관기관들도 그간의 관례에 비춰 '어차피 관료 출신이 올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지난 4일 공모를 마감한 주택금융공사 사장직에 관료 출신인 최준우 전 증선위 상임위원(행시 35회)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고, 김광수 전 회장(행시 27회)이 이달 초 은행연합회장으로 선출되면서 공석이 된 NH농협금융지주 회장직 후보군에도 전직 관료들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관료 출신이 금융공기업이나 유관기관으로 내려오는 관행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117개 금융기관에 최근 6년간 근무한 전직 경제 관료가 200명을 훌쩍 넘는다. 물론 관료 출신들이라고 해서 공공기관장 인선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전문적 식견과 경험을 갖추고 있고, 강력한 개혁을 추진할 능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자격이 있다. 다만 내부 규정과 절차를 무시한 채 고위 관료를 지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공 기관장 자리에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그릇된 관행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낙하산 인사는 조직의 혁신이나 발전보다 현실에 안주하기 마련이고, 국민보다 임명권자와 그들만의 이익을 우선해 정책의 방향성을 결정할 개연성이 다분하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드러났듯 자칫 국민 안전까지 위협할 지경에 이른다. 한국거래소 노동조합이 손 전 부위원장이 이사장에 내정된 직후 "실패한 자본시장 정책을 주도한 관피아의 낙하산 인사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내고 천막 농성에 돌입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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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과 야당 시절 더불어민주당은 낙하산 인사를 '적폐'로 규정했다. "보수정권이 금융권 인사를 관치(官治)로 물들였다"고 비난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 여야 4당 대표들과 첫 회동 자리에서 "공기업 등 공공기관 인사에 있어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는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해 취임사에서도 문 대통령은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과거 적폐에서 벗어나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임을 공언했다. 집권 5년 차를 앞둔 2020년 연말,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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