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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매출 5조원의 한인신화 '포에버21'은 왜 영원하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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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業스토리]25평 옷가게에서 800개 매장 거대 패션기업으로
카피 제품 '상표권 소송'에 '노동법 소송'까지 끝없는 잡음
오프매장 확장에만 집중 새로운 소비층 'Z세대'의 외면
100억 달러 부채까지 떠안아 9월 美법원에 파산보호 신청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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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1980년대 미국에 이민을 간 한인 부부가 로스앤젤레스(LA)에서 25평 (82㎡)짜리 작은 옷가게를 연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 57개국 800여 개 매장에서 연 매출 5조원을 기록하는 거대 패션기업으로 성장한 '포에버21(FOREVER21)'. 한국계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평가받으며 한때는 자라, H&M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를 제치고 SPA 브랜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포에버21은 이름과 달리 그 명성은 영원하지 못했다. 올해 6월부터 구조조정설이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9월30일 미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공식 접수했다. 캐나다, 일본 등 40개국에서 사업을 접고 전 세계적으로 350여 개 점포 철수가 결정됐다. 시간제 근로자까지 포함해 3만여 명의 직원 중 18%의 인원 감축까지 예고했다.

장진숙, 장도원씨 부부

장진숙, 장도원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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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동대문 신화를 이룬 한인 부부

포에버21을 설립한 장도원·장진숙 부부는 1981년 미국 LA에 이민을 간 한국계 이민자다. 영어 한마디 할 줄 몰랐지만 주유소, 세탁소, 접시 닦기 등 온갖 잡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패션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주요소에서 일할 당시 한 의류업계 종사자가 고급 승용차를 몰고 온 뒤부터다. 그저 부러운 마음에 장씨 부부는 옷가게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1984년 장씨 부부는 LA 패션 디스트릭트 자바 시장에 25평 규모의 작은 옷가게를 차렸다. 가게 이름은 '패션21(Fashion21)'이었다. 옷가게의 콘셉트는 지금 가장 유행하는 옷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미국판 동대문'이었다.


LA 한인들은 물론 젊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패션21'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설립한 해에 3만5000달러(약 4120만원)였던 매출은 이듬해 70만 달러(약 8억250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성장을 거듭하자 이들은 사명을 '포에버21'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패션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자라, H&M, 유니클로 등 세계적인 SPA브랜드를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미국 내에서는 5대 의류회사로 꼽혔다. 미국을 넘어 유럽, 아시아, 남미 등으로 매장을 확장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1년에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꼽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장진숙씨가 38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장씨 부부는 2016년 당시 자산 50억 달러(약 6조원)를 평가 받으면서 포브스 '미국 400대 부자' 특별호 표지 모델을 장식했다. 이들 자산은 LA 지역에서 부호 10위 안에 들 정도였다.


사업이 커지면서 장씨 부부의 자녀들도 경영에 뛰어들며 가족경영이 시작됐다. 장씨 부부의 장녀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 린다 장이 2009년 포에버21에 합류해 현재는 부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차녀 에스터장도 비주얼 디스플레이를 담당하고 있다. 가족들이 합류한 이후 여성 의류 외에도 남성복, 화장품, 라이프스타일 제품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렇게 급성장을 달리던 포에버21은 왜 내리막길을 걷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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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 제품에 노동법 위반 구설수까지

포에버21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이기도 했던 '디자이너 카피 제품'은 결국 포에버21의 발목을 잡았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스포츠 브랜드는 물론 구찌, 샤넬, 마크 제이콥스,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등 명품 브랜드를 카피한 제품들을 내놨고, 이와 관련한 소송이 줄을 이었다. 포브스에 따르면 포에버21에 제기된 상표권 침해 소송만 50여 건이다.


특히 디자이너 안나 수이와의 법적 투쟁은 패션업계에서도 화두가 된다. 지난 2007년 안나 수이는 미연방 뉴욕남부지방법원에 포에버21을 상대로 의류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는데, 2009년 법원은 안나 수이의 저작물에 대한 모든 배타적 권리와 이익 소유를 인정하고, 포에버21에는 저작물의 제작, 판매, 수입, 수출 등의 행위를 영구적으로 중단하라는 판결이 났다. 2017년에는 구찌와 2년 동안 치열한 소송 공방을 벌인 적도 있다.


파산 직전이었던 올해 9월에는 미국 팝 스타 아리아나 그란데가 포에버21을 상대로 1000만 달러(약 12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포에버21이 운영하는 뷰티업체 라일리 로즈에서 아리아나 그란데의 노래 '7링스(7Rings)' 뮤직비디오의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그대로 베낀 광고물을 제작한 점과 5집 앨범 '생큐, 넥스트(Thank U, Next)' 표지를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소송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여기에 노동법 위반 소송도 끊이지 않았다. 한창 성장해가던 2001년에는 19명의 계약직 직원들이 최저 임금 미만의 월급을 받고 일했으며, 이에 불만을 제기한 직원은 해고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포에버21은 불매 운동까지 겪었으나 2012년, 2014년에도 이와 비슷한 노동 관련 소송이 이어졌다. 이런 과정에서 포에버21은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고 결국 소비자들은 포에버21을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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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인 오프라인 매장 확장, 소극적인 온라인 대응

많은 전문가들은 포에버21이 'Z세대(1995년 이후 태어난 세대)'를 잡지 못한 것을 가장 결정적인 파산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Z세대는 어릴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디지털 원주민)' 세대라는 점인데, 포에버21은 이를 무시하고 오프라인 확장에만 몰두했다. 아마존의 등장 이후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경쟁 SPA브랜드들은 온라인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반면 포에버21은 2016년까지도 오프라인 매장을 확장했다.


게다가 '매장 크기'에 집착한 점도 문제였다. 오프라인 매장의 구매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큰 매장을 고집했다. 실제로 포에버21의 전 세계 매장 평균 크기는 1058평(3500m²)에 달한다. 결국 높은 임대료 대비 매출 감소로 경영난에 시달려야 했다. 린다 장 부회장도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6년 동안 7개국에서 47개국으로 확장했다. 이 때 많은 문제가 생겼다"고 고백한 바 있다.


연 매출 40억 달러(약 4조70000억원)에 달했던 매출은 지난 2017년 기준 3억4000만 달러(약 4000억원)으로 10분의 1토막이 났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던 포에버21은 결국 파산보호신청을 냈다. 부채는 자회사를 포함해 최대 100억달러(12조원)로 추산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난달 말을 기점으로 사업을 철수했고, 캐나다 매장은 11월까지만 운영된다. 미국에서만 내년 말까지 178개 매장이 문을 닫을 예정이다.


린다 장 부회장은 포에버21의 파산과 관련해 "회사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단계였다"며 핵심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에버21이 이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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