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가을귀]분서는 계획적 화형이자 참수
윤희윤 대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도서관 지식문화사’
진의 시황제는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실시했다. 법가를 통치의 이념적 기반으로 삼았다. 진시황은 기원 전 213년 흉노족 토벌 후 함양궁에서 대연회를 베풀었다. 잔치가 무르익어 갈 무렵 제나라 출신 박사 순우월과 복사 주청신은 봉건제와 군현제를 놓고 말다툼했다. 승상 이사는 순우월의 봉건제 주장을 듣고 격노했다. 그는 진시황에게 점성학, 농학, 의학, 점술 등을 제외한 진대 문헌과 제자백가 문헌은 불태우자고 간청했다. 시황제는 바로 분서(焚書)를 지시했다.
책의 수난은 20세기 전쟁으로 절정에 치달았다. 폴란드 도서관은 나치 독일의 무차별 폭격으로 소장 도서 70~80%를 잃었다. 독일은 소련에서 톨스토이 도서관 등도 잿더미로 만들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중국을 침공하면서 도서관 3807곳과 서적 약 1000만권을 파괴했다. 일본 역시 미군의 폭격으로 서적 절반가량을 잃었다.
책의 수난은 최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도 이어졌다. 바그다드는 인류 문명의 시원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이자 중세를 호령한 이슬람 제국의 수도였다. 2003년 3월 미군이 바그다드로 입성해 이라크 체제가 몰락하자 많은 시민은 이라크 국립도서관과 문서관에 난입했다. 이들은 귀중한 문화유산을 약탈하고 휘발유로 서고의 책 100만여 권을 태웠다. 화재는 인접한 바이트알히크마 공공도서관, 바그다드대학 도서관, 바스라 자연박물관, 이슬람 도서관 등에서도 이어졌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2015년 모술대학교 도서관에 폭발물까지 설치했다. 니네베(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유적) 고문서와 이라크 최초의 인쇄소에서 간행한 고대 시리아어 서적, 오스만 제국 자료, 20세기 초 이라크 신문 같은 고문서와 희귀서 1만점 이상을 없애버렸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는 “도서관 소장품에 대한 인류 역사상 가장 지독한 파괴 행위이자 문화적 청소”라고 규탄했다.
인간이 책과 도서관을 파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윤희윤 대구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도서관 지식문화사’에서 도서관의 탄생과 의미, 변화 등에 대해 방대한 사료를 들어 설명한다. 고대 도서관 복원도부터 세계 곳곳의 도서관 사진까지 다양한 도판을 펼친다. 도서관을 중심으로 인류의 6000년 지식문화사를 조망한다. 저자는 분서와 파괴의 원인을 심리, 이념, 정치, 사회ㆍ종교, 지식문화 등 다각도에서 분석한다.
“심리적 측면에서는 인간의 원초적 파괴 본능, 지배자의 획일적이고 완고한 세계관, 독선적 과시적 성격, 가학적 광기 등에 기인한다. 이념적 측면으로는 이데올로기 대립과 전쟁, 식민지배 이념의 확산 등이 영향을 미치고 정치적 측면에서는 지식의 권력 도구화, 지배권력의 정당성 확보와 우상화, 정복지 국민의 자존심 유린, 우민 정책의 방편, 책과 도서관의 체제 위협성 제거 등이 크게 작용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1933~1945년 재임)은 이렇게 웅변했다. “책은 화재로 죽지 않는다. 사람은 죽지만 책은 결코 죽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어느 세력도 폭압에 대항하는 인간의 영원한 투쟁을 구체화한 책을 제거할 수 없다. 이 전쟁에서 책이 무기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책과 도서관의 역사는 인류의 지성사인 동시에 야만적 역사를 대변한다. 후자에서 책은 신성과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박해와 약탈의 대상이다. 고대에는 신화와 왕권으로, 중세에는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했다. 그러나 어떤 명분에도 분서가 검열의 전형이며 담론과 아이디어 교환의 종식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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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선처할 여지가 있는 충동적 범죄가 아니라 치밀한 시나리오에 근거해 집단적 사고력을 거세하고 정체성을 와해시키는 화형이자 참수”라고 지적했다. “지구촌에서 분쟁과 전쟁이 멈추지 않는 한, 이념적ㆍ권력적ㆍ정치적ㆍ종교적 탐욕과 극단주의가 활보하는 한, 분서와 도서관 학살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장구한 세월 동안 지속된 도서관 수난사가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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