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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도시순례] 지역은 어떻게 되살아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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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도시순례] 지역은 어떻게 되살아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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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던 경포ㆍ안목해변

낡은 여인숙 철거하자

탁 트인 바다와 함께

숨은 '커피집' 드러나


알아서 찾고 공유하는 사람들

지역 성장의 해답은

무조건적인 '개발' 아냐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각 지역도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꿈꾼다. 수도권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성장'은 이제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한 존재가 됐다. 인구는 감소하고, 늙어가고 있다. 사회복지 비용 지출은 늘어가지만 재원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대규모 산업 시설을 갖추고 있어 안정적인 재원 조달과 인구 증가를 향유하던 많은 도시는 산업구조의 변동에 따른 축소와 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거의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각종 연구 용역을 실시하고, 공무원들과 주민들을 국내외 사례지에 보내고, 기업 유치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관광은 지역의 마지막 비상구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관광 진흥을 위한 노력들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투입된 예산은 낭비되고 있다.


실패 사례들 사이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예외적인 존재가 있다. 동해안에 위치한 강릉시와 속초시 그리고 양양군은 주말마다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산업이 발전하는 것은 물론 정착을 원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인구 감소 추세를 늦추고 있다. 동해안 지역의 변화에 대해 많은 지자체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확충된 도로와 철도 같은 인프라 개선의 효과로 간주하고 자신들에게도 이와 같은 투자를 해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과연 인프라만 개선된다면 사람들이 몰려오고 지역에 활기가 넘칠 수 있을까?


강릉은 예전부터 영동 지역 중심지이자 청춘들에게 낭만을 상징하는 존재처럼 인식된 곳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까지 강릉은 제대로 된 숙박 시설도 거의 없고, 바닷가에서 자판기 커피나 마시고 돌아서는 지역으로 쇠락하고 있었다. 유명세를 떨치던 경포대를 비롯한 동해안 해수욕장은 수온의 변화로 활용 가능한 일수가 줄었으며, 해수면 상승으로 모래사장 유실이 계속되면서 더 이상 사람들에게 좋은 피서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하면 대부분 지역에서는 무엇을 더 추가하려고 노력한다. 새로운 것을 도입해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그런데 강릉시는 이 시점에서 더하기가 아닌 '빼기'를 택했다. 경포해수욕장에는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낡은 무허가 여인숙들이 산재해 있었다. 탁 트인 바다를 보기 위해 찾은 사람들이 처음 보는 것은 낡은 블록으로 지어진 여인숙들의 뒷모습뿐인 것이 현실이었다. 강릉시는 침체의 시기를 기회로 삼았다. 관광객이 줄면서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시설들로서는 시 당국의 설득과 권유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턴가 경포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건물이 아닌 탁 트인 동해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빼기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장점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연을 가장한 행운이 찾아왔다.


일러스트=이영우 기자 20wo@

일러스트=이영우 기자 20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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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부터 강릉에는 몇몇 커피집이 들어섰다. 산속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따라가야 하는 곳, 바다와 가깝기는 하지만 바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선 커피집들은 맛있는 커피를 내놓지만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원두커피 열풍이 몰아닥치면서 많은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제 바닷가에서 달콤한 자판기 커피가 아닌 제대로 된 커피를 찾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안목해변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던 횟집들이 사라지고 커피집들이 들어섰다. 커피집마다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변화하는 안목해변의 모습을 강릉시민들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문화에 대해 갸우뚱하던 주민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방문해 커피를 마시며 커피의 맛과 멋을 알게 됐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까지 커피를 마시게 되면서 커피집들은 주말 장사가 아니라 상시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됐고, 더 많은 카페가 다양한 모습으로 생겨났다. 이렇게 들어선 카페들은 도시의 풍경을, 그리고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변화가 나타났다. 젊은 방문객들은 잘 알려진 관광지가 아닌 곳을 발로 누비고 다니면서 새로운 곳을 찾고, 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공유했다. 주머니가 얇은 청춘들은 닭강정과 호떡 그리고 꼬막을 발견하고 열광했다. 힙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젊은 층의 수요가 늘자 각종 빵집, 레스토랑 등이 들어섰으며 이는 다시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게 했다. 수요자가 알아서 콘텐츠를 발굴하고 공유하면서 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만들어가게 됐다. 재미있고 가볼 만한 곳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그리고 새로운 시도와 아이디어들이 더해졌다. 동계올림픽을 위해 새로 개통된 KTX는 이러한 변화가 더 빠르게 일어나게 했지 그 자체가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아니다.


지역의 변화와 부활은 노력과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이 크게 작용한다. 그렇지만 그런 운을 놓치지 않고 붙잡고 더 키우는 것이 지역의 역량이고 능력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무엇을 하려면 습관적으로 '관'을 쳐다본다. 공무원과 기관이 나서고, 예산을 투입하고, 제도를 바꿔야 무엇인가가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 대부분은 만든 사람들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지역의 공무원과 주민들이 보여주고 싶고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장소들은 고리타분하고 관심을 끌지 못한다.


오히려 가만히 내버려두면 사람들은 그곳에서 흥미로운 것을 찾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서로 공유한다. 억지로 무엇을 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재미있어 하는지를 잘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눈높이가 아닌 상대의 눈높이와 취향을 존중하고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유연성이 있는 곳에 사람들은 몰리게 된다. 지역이라는 문제에 대한 답은 인프라가 아닌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은 서울대 조경학과와 환경대학원을 졸업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입법조사처를 거치면서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다. 도시, 환경, 국제 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것을 나누고 싶어 한다. 최 위원에게 도시는 사람과 같다. 사람이 성장하고 늙어가는 것처럼 도시도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면서 흥망성쇠를 겪는다. 아시아경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와 지역, 경제 이야기를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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