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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근본적 자유 찾는 '방랑자들'

최종수정 2019.10.27 11:10 기사입력 2019.10.2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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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올가 토카르추크 대표작

여행에서 근본적 자유 찾는 '방랑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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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없이 움직이는 여행이야말로 인간을 근본적으로 자유롭게 한다고 역설

"멈추는 자는 화석이 될 거야. 움직여, 계속 가, 떠나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리니"


“한 귀퉁이에 서서 바라보는 것. 그건 세상을 그저 파편으로 본다는 뜻이다. 거기에 다른 세상은 없다. 순간들, 부스러기들, 존재를 드러내자마자 바로 조각나 버리는 일시적인 배열들뿐. 인생? 그런 건 없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선, 면, 구체, 그리고 시간 속에서 그것들이 변화하는 모습뿐이다.”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 ‘방랑자들’에서 회자되는 여행은 물리적인 이동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내면을 향한 여정이자 묻어 두었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시도다. 시련과 고통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는 경험하기 어렵다. 주어진 시간의 한계에 쫓기며 살아가기도 벅차다. 그래서 여행은 쉼표처럼 다가온다. 이 책의 제목인 ‘방랑자들’은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토카르추크는 여행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내밀한 이야기를 기록해 그들에게 불멸의 가치를 부여한다. 구성은 다성적이다. 10여 개 문장으로 이뤄진 짧은 텍스트도 있고, 중편소설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긴 이야기도 있다. 모두 여행기 형식이지만, 실은 독자가 사색하도록 유도하는 철학적인 내용이다.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라서 읽을 때마다 느낌과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우리의 몸뚱이는 가엾고 추하다. 예외 없이 전부 가루로 으깨어질 운명을 타고났다.”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단절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작품 전체로 보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공항에서 여행객들이 끊임없이 서로 마주치고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흡사하다.


앞에서 언급한 에피소드의 후속 스토리가 뒷부분에서 이어지기도 한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시체를 박제해 ‘호기심의 방’에 전시한 프란츠 1세에게 항의 편지를 보내는 딸의 사연, 크로아티아로 여름휴가를 떠났다가 아들과 아내를 잃어버린 사내의 이야기, 공항에서 시리즈로 전개되는 여행 심리학에 대한 강연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날 즈음, 다음 에피소드의 공간적 배경에 대한 단서를 은밀히 제시하기도 한다. 뉴질랜드를 발견한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의 이야기에 이어 호주의 한 해변에서 길을 잃고 죽음을 맞은 고래의 사건을 언급하는 식이다. 경계를 허무는 방랑자들처럼 형식의 한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멈추는 자는 화석이 될 거야, 정지하는 자는 곤충처럼 박제될 거야, 심장은 나무 바늘에 찔리고, 손과 발은 핀으로 뚫려서 문지방과 천장에 고정될 거야. (…) 움직여, 계속 가, 떠나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리니.”


토카르추크는 독자를 쉼 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여행이야말로 인간을 근본적으로 자유롭게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우리가 머무는 공간, 우리가 움켜쥐고 있는 소유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등이 삶의 본질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한다.


스웨덴 한림원이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며 찬사를 보낸 대목이다. “삶의 한 형태로서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해박한 열정으로 그려낸 서사적 상상력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물리적인 이주(移住)와 문화의 이행에 초점을 맞춘, 위트와 기지로 가득하다”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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