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준 '스타트업 록스타처럼 성공하라'

2007년 앨범을 무료나 다름없는 방식으로 판매해 화제가 됐던 세계적 밴드 라디오헤드.

2007년 앨범을 무료나 다름없는 방식으로 판매해 화제가 됐던 세계적 밴드 라디오헤드.

AD
원본보기 아이콘


'라디오 헤드 = 크립' 공식 생기자 공연·인터뷰서 과감하게 배제

'디카' 외면한 코닥 반토막, 고품질 고수한 K마트 파산

쉽게 뛰어들고 빨리 변하는 시장

록밴드와 스타트업 공통점 짚어 조직의 '크립' 경계 강조


1988년 북해의 해양 플랜트(천연자원을 뽑아내는 구조물) '파이퍼 알파'에서 폭발이 발생했다. 사소한 부주의가 초래한 사고였다. 가스 밸브가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압력을 견디지 못한 밸브 틈새로 가스가 누출되고 여기에 불이 붙어 폭발이 일어났다. 고압 가스관까지 열을 버티지 못하고 터지면서 견고한 철 구조물 절반 이상이 바다에 잠겼다.

현장에는 인부 288명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구조물에 남아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거나 시커먼 기름으로 뒤덮인 30m 아래 바닷물로 뛰어들거나…. 크레인이 붕괴되면서 내부에서 근무한 인부 여든한 명은 모두 사망했다. 남은 인부 가운데 쉰세 명은 저체온증을 감수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들은 모두 목숨을 건졌다.


이 사건 이후 ‘불타는 플랫폼(Burning Platform)’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큰 위험을 무릅쓰고 전과 다르게 변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을 뜻한다. 위기 속에서 과감한 변화와 혁신만이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용어는 2011년 노키아모바일을 인수한 마이크로소프트모바일의 스티븐 엘롭 최고경영자(CEO)가 언급해 유명해졌다. 그는 직원들 앞으로 보낸 이메일에서 노키아가 당면한 위기 상황을 파이퍼 알파 화재 사고에 비유했다. “우리는 지금 불타는 플랫폼 위에 서 있습니다. 어떻게 변해야 할지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종길의 가을귀]"히트곡 더이상 안 부른다" 위기서 빛 발한 '밴드 경영학' 원본보기 아이콘


이용준 제일기획 프로는 저서 ‘스타트업 록스타처럼 성공하라’에서 엘롭 CEO가 ‘불타는 플랫폼’을 절체절명의 위기이자 좋은 기회로 봤다고 강조한다. 스타트업이 치열한 비즈니스 환경에서 살아남는 비법 가운데 하나라며 록밴드에서도 이런 면면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가리키는 록밴드는 라디오헤드다. 그들은 결성 초기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1992년 EP앨범 ‘드릴(Drill)’을 발표했으나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해 라디오헤드는 싱글 곡 ‘크립(Creep)’을 발매했다.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우울한 가사 탓에 영국 BBC 라디오는 이 노래를 블랙리스트로 분류됐다.


‘크립’은 우연치 않게 미국의 한 방송국 전파를 타면서 히트곡이 됐다.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영국 언론으로부터도 주목을 받았다. 당시로는 보기 드문 역주행 인기로 큰 이슈가 됐다. 라디오헤드는 1993년 ‘크립’을 수록한 공식앨범 ‘파블로 허니(Pablo Honey)’로 세계의 각종 음악 차트까지 휩쓸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크립’의 너무 뜨거운 인기 탓에 ‘라디오헤드=크립’이라는 공식이 생겨버렸다. 라디오헤드의 신규 앨범 발표 현장에서 기자들은 ‘크립’에 대해서만 질문했다. 비평가들로부터 신규 앨범은 1990년대 최고의 앨범이라는 호평이 이어졌지만, 이마저도 ‘크립’의 열기에 묻혀버렸다.


앨범 투어에서도 ‘크립’을 불러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대중은 오로지 ‘크립’을 외칠 뿐이었다. ‘파라노이드 안드로이드(Paranoid Android)’, ‘에브리씽 인 잇츠 라잇 플레이스(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하이 앤드 드라이(High And Dry)’ 같은 수많은 히트곡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종길의 가을귀]"히트곡 더이상 안 부른다" 위기서 빛 발한 '밴드 경영학' 원본보기 아이콘


라디오헤드는 1998년 더 이상 ‘크립’을 라이브 공연에서 부르지 않기로 한다. 자신들의 최고 히트곡을 배제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실제로 이들이 공연에서 ‘크립’을 부른 경우는 지난 20년 동안 10여 회에 불과하다. 이들은 2012년 첫 내한 공연에서도 ‘크립’을 부르지 않았다. 인터뷰도 ‘크립’에 대한 질문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공연에서 ‘크립’을 불렀다는 것만으로도 이슈가 됐다.


결과적으로 라디오헤드의 결정은 옳았다. 자신들을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히트 상품을 철저히 외면해 끊임없는 음악적 변화와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라디오헤드는 1997년 정규 3집 앨범 ‘오케이 컴퓨터(OK Computer)’를 통해 세계적인 록밴드로 우뚝 섰다. ‘오케이 컴퓨터’는 영국 앨범 차트 정상에 올랐다. 미국에서 그래미상도 받았다.


저자는 라디오헤드의 결단이 스타트업 조직에 절실히 요구되는 요소라고 강조한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한 곡으로 인기가 사라지는 ‘원히트 원더(One-Hit Wonder)’를 걱정한 라디오헤드가 자신의 히트곡을 스스로 버리고 새로운 동력원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변화하는 시장에 대비하기 위해 노력하는 조직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자신의 히트곡을 과감하게 버리는 아픔 속에 더 큰 도약과 성장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1980년대까지 카메라 시장에 군림했던 코닥은 2000년대까지 디지털 카메라 시장을 외면했다. 그 결과 주가는 반토막 났고, 구조조정으로 직원의 3분의 2가 잘려나가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미국 유통업계의 공룡이었던 K마트도 기존 경영 방침과 고품질 전략만 고수하다 2012년 파산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종길의 가을귀]"히트곡 더이상 안 부른다" 위기서 빛 발한 '밴드 경영학' 원본보기 아이콘


라디오헤드는 ‘크립’을 가장 싫은 노래로 꼽았다. 그리고 ‘크립’을 뛰어넘기 위해 안간힘 썼다. ‘크립’으로 승부욕을 스스로 자극하는 가운데 모던록 최고의 명반을 만들어낸 것이다. ‘크립’은 부와 명예를 안겨준 도깨비 방망이이자 회초리였다.

AD

저자는 “라디오헤드에게 ‘크립’은 단순한 슈퍼 히트곡이 아니라 더욱 더 강한 밴드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었다”며 스타트업 조직 또한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어떤 조직이든 ‘크립’을 철저히 경계하고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직에 히트곡이 있다면,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