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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분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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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환 국제부장


바야흐로 '분노의 시대'다. 몇 개월 사이 전 세계 주요 도시가 시위대의 분노로 들끓고 있다. 칠레 산티아고, 에콰도르 키토 등 남미 주요 도시는 성난 시위대와 군ㆍ경찰의 충돌이 잇따르면서 무정부 상태로 치닫고 있다. 대서양 건너 유럽도 시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찬반으로 양분된 시위로 소란스럽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독립을 요구하는 카탈루냐 주민들의 시위가 재점화했다. 아시아라고 조용하지 않다. 지난 6월 이후 5개월 가까이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홍콩에서는 지난 주말에도 어김없이 시위대의 도심 점령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성난 외침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도시마다 시위의 발화점은 제각각이다. 칠레에서는 어찌 보면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단돈 50원의 지하철 요금 인상이 거대한 시위로 번졌다. 에콰도르에서는 정부가 수십년간 유지하던 유가 보조금을 폐지한 것이 시위의 발단이 됐다.

역사ㆍ정치ㆍ사회적으로 서로 다른 배경 속에 표출되고 있는 이같은 분노의 밑바탕에는 공통의 배경이 있다. 세르게이 구리에프 전 유럽부흥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이를 '경제적 우려(economic concerns)'로 규정했다.

칠레 사태는 언뜻 우리의 상식으로는 머리를 갸웃하게 한다. 남미에서 가장 안정적인 정치ㆍ사회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나라가 아니던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 역시 1만6000달러로 남미에서는 비교적 잘사는 나라에 속한다. 그런 칠레에서 지하철 요금 50원 때문에 대규모 소요가 일어났으니 말이다. 칠레 사태의 근본적 이유는 소득 불평등으로 심화하는 빈부격차다. 그동안 더 심한 다른 남미 국가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국민 소득은 우리나라 절반 수준인데 물가는 오히려 서울과 비슷하거나 더 높다.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그동안 쌓인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진 셈이다.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이라는 정치ㆍ사회적 이슈가 촉발한 홍콩 시위 역시 근본적으로는 홍콩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좌절이 분노로 표출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소득으로는 감내하기 힘든 집값, 부족한 일자리에 좌절한 그들은 여전히 검은 마스크를 쓴 채 거리로 나서 공권력과 맞서고 있다. 스위스 UBS그룹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홍콩 주민들이 자신의 소득으로 60㎡짜리 주택을 구입하려면 24년이 걸린다. 전세계 주요 도시 중 이 기간이 20년을 넘는 곳은 홍콩이 유일하다.

대한민국도 시위에 몸살을 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시위대에 점령당하고 있다.

최근 국회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공정'이라는 표현을 27차례나 반복해 언급했다. 그런데 그처럼 공정을 강조한 시정연설이 여전히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조국 전 장관 사태를 지켜보며 많은 국민이 좌절과 분노를 느꼈다. 그 수가 조 전 장관을 지지한 사람보다 더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 젊은이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스스로 적폐를 청산할 개혁의 주체로 자임하는 사람들의 반칙에 분노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그같은 불공정이 경제적 불평등으로 대물림되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다.

그런데 여전히 당사자도, 임명권자의 생각에 변화가 엿보이지 않는다. "다양한 의견 속에서도 국민의 뜻이 하나로 수렴하는 부분은 검찰 개혁"이라는 시정연설 표현에서 대통령이 여전히 한쪽의 목소리에만 귀기울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만 옳다'는 생각을 고집하며 반대편 목소리에 귀를 닫는다면 분노의 크기는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이제 두 귀를 모두 열어야 할 때다.






정두환 기자 dhjung6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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