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경쟁법적 규제와 산업규제ㆍ산업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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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래 통신시장은 대체로 법률상 독점 내지 정부 규제가 지배하고 있었다. 1990년대 들어 경쟁체제가 도입되기 시작한 후에도 유무선 통신의 양대 영역에서 과점구조는 유지되고 있다.


법률상 독과점 체제하에서 그 폐해를 인위적으로 시정하고 경쟁시장에 상응하는 시장성과를 담보하기 위한 산업 규제가 독점 사업자의 경쟁제한 행위를 방지하고 효과적인 경쟁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경쟁법적 규제와 병존하고 있다.

이처럼 양대 규제가 혼재하는 것은 민영화와 경쟁원리의 도입에도 여전히 독과점 사업자가 시장에서 압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후발 사업자는 지배적 사업자와 경쟁할 만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 당국으로서는 사전 규제를 포기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반면 경쟁 당국으로서는 경쟁제한 행위에 대한 사후 규제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배적 사업자는 경쟁 사업자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원가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경쟁조건 아래서 자유로운 가격경쟁이 도입되면 다른 경쟁 사업자는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고 결국 독점시장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세계 각국은 통신시장에 특유한 별도 규제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통신산업이 경쟁구조로 전환해 나가는 과정이나 통신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통신시장에 경쟁법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하면 오히려 통신시장의 경쟁 보호나 통신산업 육성에 저해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사한 사례로 지난 2월 EU 경쟁당국이 세계 2위 철도차량 제조업체인 독일 지멘스와 3위 프랑스 알스톰의 철도사업 합병을 불허했다. 두 회사 간의 수평적 합병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가격 상승, 혁신 감퇴 등 소비자 후생도 저해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에 독일과 프랑스의 재무부 장관들은 '21세기 유럽연합(EU)의 산업정책을 위한 독일ㆍ프랑스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유럽 기업들이 합병으로 규모를 키울 수 있도록 합병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글로벌시장에서 미국ㆍ중국 기업에 맞서려면 유럽에서도 공룡 기업을 키우고 경쟁법적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경쟁 당국은 산업규제, 산업정책과 일견 다른 입장을 보인다. 경쟁 당국은 IT 대기업들의 빅데이터 수집 과정에서 후발주자의 시장 진입 저해 여부를 검토하고, 특히 인수합병(M&A)에 의한 데이터 독점 발생 시 빅데이터 매각 등 시정조치 부과를 검토 중이다.


최근에는 IPTV의 케이블 M&A와 관련해 각각의 대리점이 원래 업무 외에 다른 상품까지 판매하는 것을 금하는 소위 교차판매 금지 조건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는 대규모 데이터의 수집ㆍ활용이 데이터 경제로 이행하는 데 보다 중요한 반면 아직 데이터 독점 폐해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성급한 면이 있다. 후자 역시 교차판매 금지는 규모의 경제 달성을 통한 유료방송시장의 경쟁력 강화와 합병에 따른 시너지를 부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권에도 중대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도외시하고 있다.


한국 경쟁법의 선구자 권오승 교수는 규제와 경쟁은 모두 공통의 문제와 공통의 목표 실현을 염두에 두고 있는 바, 이때 공통의 문제란 과도한 시장지배력과 그 남용가능성이고 이를 해결해 소비자의 후생을 증대시키는 것이 바로 공통의 목표라고 말한다.


따라서 경쟁 당국은 경쟁법적 규제 외에 산업 규제와 정책 역시 동일한 목적을 위한 고유의 역할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산업 규제 및 정책의 필요성과 전문성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한 국가의 전체적인 정책방향의 선택을 경쟁법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도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협력과 경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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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사이버법센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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