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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KBS, 그대 손실은 자랑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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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무척 괴로워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보도하기를 KBS 2018년 총 수입은 전년 대비 180억원이 줄었고 연간 321억원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올 들어 1~4월에는 670억원이 적자인데 약간 만회를 하겠지만 올 한 해 494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한다.


같은 시기, 케이블 TV Mnet 채널에서 주관하는 '프로듀스×101' 프로그램이 여러 가족들을 울리고 있다. 글로벌 아이돌 육성 프로젝트라 칭한 이 상업주의 방송은 극단적 통속 마케팅 미디어의 폐단이 어떠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5월3일부터 두 달째 방송을 하면서 시청률 8주 연속 1위라는 광채 뒤로 온갖 잡음과 스트레스 절규라는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KBS와 Mnet의 CJ ENM. 한 쪽은 돈 못 버는 무능한 올드 미디어로 주저앉고 말았다. 다른 쪽은 한류를 선도하는 혁신과 수익성과를 거머쥔 효율의 화신으로 각광받게 되었다. CJ의 Mnet, tVN, 올리브 등 명품 브랜드들과 드라마, 예능, 골프 같은 스포츠마저도 모두 석권한 JTBC 민간 섹터들은 돈 잘 벌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KBS는 패했고 종편과 대기업 미디어들은 완승하였는가? 수익 말고 다른 잣대와 가치로 평가를 해볼 여지는 없는가?


프로듀스×101 사례를 깊게 들여다보자. 내막에는 대치동식 과당 출혈 경쟁, 고액 일타 강사와 신데렐라 콤플렉스, 노예계약 등 한국식 육영 시스템 병증들이 총 집약돼있다. 지켜보던 부모들이 "돌아버리겠어요. 방송국이 애들을 극단으로 몰고 가요. 1차 투표, 2차 투표 한다면서 애들을 이용하고 조작하는 것 같기도 하고…"라며 치를 떨기도 한다.

전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오랜 기간 공개 방송하는 이런 포맷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극한 시청 체험을 수반한다. 시청자들은 이미 투우장 입장객이 되어 잔학하고 자극적인 경기를 소원하고 나섰다. 대한민국 오디션 첫 안타 '슈퍼스타 K'가 부른 퇴행과 일탈의 추억도 금세 잊은 듯하다. 이벤트 오디션 정점에 올랐던 정준영, 로이 킴 두 청년 등용문이 바로 그 극한 오디션 이벤트 쇼 예능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KBS 당기 순손실은 역설적인 느낌으로 환영할 만한 일로 다가온다. 시청률 광고 수입에 눈멀어 기상천외한 상업주의 민폐를 끼치지 않았으니 칭찬받아 마땅하다. 만약에 KBS가 똘똘 뭉쳐 착한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확고하게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적자를 보았다면 나는 KBS 시청료 인상까지도 마구 지지하고 싶다. 현행 월 2500원을 BBC나 NHK 수준인 월 2만원까지로 대폭 인상할 명분도 된다고 본다.


사실 영국인이 TV 라이선스라는 시청료를 매달 2만원쯤 BBC에 건네는 데에는 분명한 조건이 딸려 있다. 내가 영국인이고 내 자식과 후손 또한 자긍심 높은 영국인이라는 가치를 지켜달라는 지출 품의서이기도 하다. 실제로 흙수저 루저였던 조앤 롤링이 어릴 적 일상에서 벗해온 BBC로부터 얻은 지식과 풍부한 감성을 발판 삼아 기어이 '해리 포터'를 빚어냈다. 방송을 뛰어 넘은 BBC 필름이 있어 '빌리 엘리어트' '킹스 스피치' 같은 족보 있는 수작들이 탄생했다. 그 유명한 다큐나 어린이 프로그램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는 지역 신문 살리기 미담, 지역 축제로 진흙 속 유망주 발굴하기 과업에도 BBC는 늘 키다리 아저씨가 된다.


BBC는 2017년 한 해 시청료 37억파운드를 포함해 총 49억파운드(7조5000억여원)에 달하는 총 수입을 가졌지만 더 많이 내놓고 지출하여 1억2900만파운드(1900억원) 순손실을 기록했다. 2018년에는 혹독한 구조개혁과 경영쇄신으로 1억8000만파운드(2700억여원) 흑자를 달성해내 또 한 번 박수를 받았다.


KBS도 BBC와 같이 막장이나 극한 통속, 상업주의 폐단 없는 흑자 전환을 추구하길 바란다. 혹시라도 CJ같은 고수익 조직을 경쟁사로 오인한 경영진이 있어 그런 나쁜 흑자를 탐한다면 그 길로 KBS는 날개 없는 추락이다. 때로는 의미 있는 순손실을 자랑할 줄도 아는 KBS를 기대한다. 그저 우직한 길을 권고하고 싶다. 프로듀스×101같이 가볍고 쉽게 쓰인 이벤트 쇼에 대항할 좋은 콘텐츠로만 달려가면 된다. 수익성 따지고 예산 아끼다간 적자도 못 벗어나고 눈 높은 고객들 외면을 피하기도 어렵다. KBS 가치에 맞는 콘텐츠라면 펀딩을 해서라도 과감하게 투자해서 범람하는 막장 통속물들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 한다.


'TV 문학관' '전설의 고향' '겨울연가'의 KBS가 보여준 본래 정체성 그대로 되살리기만 한다면 적자는 일순간 끝나고 더욱 필요하고 존경받는 국가기간방송으로 성장할 수 있다.


심상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 한국문화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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