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증세' 우려…소주, 종량세 대상 제외
두차례 연기…'가격 유지하며 세금 체계만 전환' 불가능 과제에 시간만 허송
맥주 물가연동제 적용…매년 가격 인상 빌미 제공 우려도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정부는 종량세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소주(희석식)와 증류주 등을 개편 대상에서 제외했다. 국내 주류시장의 37%(2017년 기준)를 차지하는 희석식 소주를 비롯해 전체 주종의 40%가 종량세 개편에서 빠진 셈이어서 '반쪽짜리에 그쳤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정부는 '소주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서 종량세로 바꾸겠다'고 한 공언을 지키기 위해 올 들어 두차례 개편안 발표를 연기했는데, 애시당초 불가능한 방안에 집착해 시간만 보냈다는 비판도 나온다.
◆'모든 주종 체계 변환' 애시당초 불가능=정부가 소주 등을 이번 주세 개편 대상에 포함하지 않은 것은 종량세로 전환할 경우 알콜 도수가 높은 술의 세금 부담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격이 저렴해 '서민 술'로 불리는 희석식소주의 세금 부담은 증가하는 반면, 위스키ㆍ증류소주 같은 고급술은 세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김병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소주세율을 올리지 않으면서 개편하려다보니 위스키 세율이 굉장히 떨어지고 세율을 같이 올리면 소주 가격이 상당히 많이 뛰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모든 주종의 종량세 전환 이슈가 제기됐을 당시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안의 중대성은 간과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당시 업계내에서 세금체계 개편에 따른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주종간 경쟁관계까지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2월 종량세 전환과 관련해 "일부 가격 상승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소주나 맥주의 소비자 가격은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이런 방침은 지난달 초 주세개편안 발표시기를 연기하기로 결정했을 때도 고수됐다. 김병규 실장은 '소주와 맥주 가격 변동없이 주세 개편을 하겠다는 게 유효한가'라는 질문에 "기본적으로 유효하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가격 조정하지 않고 세제를 건드릴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무리라고 지적한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 3일 발표한 주세개편 공청회 보고서에서 "음주의 사회적 비용을 교정한다는 주세 목적을 감안하면 현재보다 주세 부담을 더 늘리는 게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홍범교 조세연 연구기획실장은 "종량세로 가려면 소주 세율은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격 조정 없이 세금체계를 바꾸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소주, 약주, 증류주, 과실주 등 다른 주종에 대한 개편에 대해 중장기적인 과제라고 밝혔다. 하지만 목표시한을 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이상 추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가연동한 맥주, 해마다 오르나=정부는 주세 인상으로 인한 맥주 가격 인상은 없다고 못박았지만 원가부담이 커진만큼 가격 인상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주세 개편안이 시행되면 당장 생맥주의 세부담이 두 배로 커진다. 용기별로 세부담 인상율을 살펴보면 캔(-23.6%)을 제외한 병(1.8%), 페트(3.1%), 생맥주(54.6%) 등에 붙는 세금이 올라간다. 정부는 캔맥주와 생맥주를 동시에 생산하는 주류회사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캔맥주 세부담 감소분이 생맥주 증가분을 상쇄시켜 가격이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세부담이 가장 크게 늘어나는 생맥주의 경우 업체들의 세부담이 가중될 것을 우려해 세율을 2년 간 20% 감면해주는 대책을 내놨다. 2년 동안 업체가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세율이 환원되면 업체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2년 후 생맥주의 시장점유율이 꾸준히 상승한다는 전제하에 판매 이익이 세금 부담분을 넘어서지 않는 한 생맥주의 세 부담 상승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주세 개편과 함께 도입하기로 한 물가연동제도 맥주 가격 인상의 면죄부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물가연동제는 종가세가 유지되는 증류주 등 주종은 물가 상승 등에 따라 주류 가격 인상에 비례해 세부담이 증가되나 종량세가 적용되는 맥주, 탁주의 경우 세부담이 변하지 않으므로 물가연동제를 적용, 실질 세부담이 유지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2020년 1월1일부터 세율을 매년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연동해 조정하는 물가연동제를 시행하고 이를 2021년부터 적용할 방침이다. 매년 오르는 물가 상승분을 세율에 반영하겠다는 이야기인데 업체들이 부담하는 세금 규모도 매년 올라가게 되는 구조다. 홍범교 실장은 "물가연동이 되면 해마다 가격은 오르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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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는 이에 대해 "물가상승률이 1% 오른다고 업체가 가격을 1% 올리진 않을 것"이라며 "맥주회사들은 원가의 누적 상승분을 모아서 4~5년에 한 번씩 올린다"고 설명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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