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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 김선일

최종수정 2019.05.31 08:47 기사입력 2019.05.3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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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부국장

허진석 부국장

2004년 오늘, 김선일씨가 이라크의 무장단체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에 납치되었다. 김 씨는 이라크에서 미군에 각종 물품을 제공하던 한국 군납업체에서 직원으로 일했다. 당시 서른네 살. 2003년 6월 15일 이라크에 가서 1년 동안 현지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라크인 직원 한 명과 트럭을 타고 팔루자 지역을 지나다 납치됐다. 아랍계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6월 21일 처음으로 그의 납치 사실을 보도했다. 우리 정부는 무장단체와 석방을 위한 교섭을 시작했다.


무장단체 측은 이라크에 대한 한국군의 2차 파병 철회를 요구했다. 우리 정부가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6월 22일 김선일씨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 날 22시 20분, 바그다드에서 팔루자 방향으로 35㎞ 떨어진 지점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 같은 날 알자지라는 무장단체가 보낸 비디오테이프의 내용을 공개했다. 충격적이었다. 김선일씨는 복면을 한 사나이 셋 앞에서 눈이 가려진 채 무릎을 꿇고 울먹였다. 외교통상부는 하루 뒤 김선일씨의 피살 사실을 공식 확인하였다.


김선일씨의 부모는 정부를 원망했다. 그들은 "정부가 파병원칙에 흔들림이 없다는 방침을 재확인해 내 아들을 죽였다. (아들의) 시신을 외교통상부 건물에 묻겠다"고 했다. 같은 해 10월 20일에는 국가를 상대로 '재외국민 보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17억5000여만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유가족들은 국가가 파병원칙을 고수해 "김선일이 피살되도록 고의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한편에서는 개신교 신자인 김선일씨가 선교 목적으로 편법 취업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인터넷에는 그가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제출했다는 자기소개서가 나돈다. "아랍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사역을 하게 되면 영어와 아랍어와 미용기술을 통하여 그들에게 복음으로 다가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를 순교자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물론 중동에서 미군의 군납업체 직원은 개신교 선교사와 다름없이 위험한 처지임을 모르고 이라크에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신교에 책임을 분산시키는 헛소문'이라는 반박도 있었다.


3년이 지난 뒤, 김선일씨는 엉뚱한 곳에 소환돼 논쟁의 중심에 섰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2007년 6월20일 대전에서 정책토론회를 열면서 행사장에 김씨의 영상을 방영했다. "사막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 대한의 젊은이가 죽어가고 있었다"는 자막도 넣었다. 북한의 핵실험을 연상시키는 장면도 나왔다. 한나라당은 정부의 외교정책 실패를 비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가장 앞장서서 이라크 파병을 주장한 정당이었다. 도에 지나쳤다는 비판이 잇달았다. 이때도 나경원씨가 등장한다. 한나라당의 대변인이었던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지나치다는 지적은 관점에 따라 다르다"고 주장했다.

죽음은, 죽음의 장면은 언제나 참혹하고 비극적이다. 슬픔, 측은지심, 예기치 못한 죽음에 대한 공포와 주저 외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감정의 사치나 군더더기는 별로 없다. 김선일씨의 죽음에서 순교의 요소를 찾아내려는 노력이나 논란은 기독교라는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교리학자나 성경학자들이 주고받을 논쟁의 일부다. 그가 가슴 뜨거웠을 청년에서 순식간에 싸늘한 시신, 사랑의 고백조차 들을 수 없는 구체적인 슬픔이 되어 돌아왔을 때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말했던가.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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