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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온유의 느·낌·표] 마라훠궈의 시작은 막일꾼의 한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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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임온유의 느·낌·표] 마라훠궈의 시작은 막일꾼의 한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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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마라탕, 마라샹궈, 마라탕면, 마라족발…. 편의점부터 프랜차이즈까지 지금 외식업계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는 단연 '마라'다. 마라는 중국 사천 지방의 향신료로 알싸하게 매운 맛이 특징이다. 자극적인 음식을 즐기는 젊은 층에 급속히 스며들면서 '혈중 마라 농도'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유행의 척도인 유튜브에서도 마라 콘텐츠가 넘쳐난다.


한국에서 마라 유행을 불러일으킨 원조 음식이 바로 '훠궈'다. 훠궈는 보통 빨간 홍탕과 뽀얀 청탕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 마라가 듬뿍 함유된 홍탕이 인기를 끌면서 각종 마라 음식이 주목받게 됐다. 새 책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를 보면 홍탕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 젊은 층의 입맛을 사로잡은 홍탕이 알고 보니 가난한 막일꾼의 한 끼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책에 따르면 홍탕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청나라 말기 도광제 때 발달했다는 설도 있고, 청나라 멸망 이후 중화민국 시절인 1920년대에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그중에서도 쓰촨 성 충칭의 부둣가에서 밧줄로 배를 끌던 선부들이 먹던 음식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하루 벌어먹고 살기도 버거운 선부들은 할 수 없이 소 창자와 천엽, 오리내장 같이 값싼 부스러기 고기를 긁어모아 펄펄 끓는 육수에 데쳐 먹었는데, 잡내를 없애기 위해서 육수에 향신료를 넣었다는 것이다. 특히 쓰촨 성은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입맛을 잃기 쉬운 지역이라 마라 같이 맵고 강한 향신료가 자주 쓰였다. '사천 사람은 음식이 맵지 않을까 두려워한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라고 한다.


홍탕과는 반대로 청탕의 기원은 청나라 귀족의 요리로 베이징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청탕은 양고기를 뽀얀 육수에 흔들어 씻듯이 데쳐먹는 궁중 요리 '솬양러우'에서 시작돼 점차 민가로 퍼졌다고 한다. 청나라 만주족은 본래 돼지고기를 좋아하고 양고기에 익숙하지 않은 민족이나, 한족을 견제하기 위해 손잡은 몽골족을 위해 솬양러우를 내어놓았다. 저자는 "훠궈 인기의 비결은 극과 극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맛의 조화"라며 "음식뿐 아니라 중국의 역사 발전에도 이런 측면이 없지 않다"고 했다.


책은 하, 은, 주 시대부터 21세기인 오늘날까지 중국을 만들고, 중국을 바꾼 다양한 음식들을 즐비하게 차려 놓았다. 생선ㆍ양고기ㆍ복숭아 등 중국인이 신성하게 여기는 음식부터 훠궈ㆍ동파육ㆍ돼지고기처럼 지배층의 통치원리를 엿볼 수 있는 음식, 소주ㆍ후추ㆍ고구마 등 국제 정세와 문화 교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음식까지….

저자는 "복잡한 연표나 황실의 계보가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는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며 "식생활이야 말로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한 시기를 풍미한 음식들은 그 자체로 긴밀하게 정치, 사회,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원초적인 코드가 된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실제로 1971년 중국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비밀 협상을 통해 화해와 수교를 한 배경에는 북경 오리가 있었다고 한다. 팽팽한 줄다리기 속 협상 결렬 직전까지 갔지만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미국 특사 헨리 키신저에게 밀전병에 오리구이를 싸주며 분위기를 유화시켰다는 것이다.


한때 '메이드 인 차이나'는 값싼 공산품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다르다. 전 세계의 경제, 문화 전반을 주도하고 있으며 앞으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화웨이, 알리바바를 비롯한 IT 기업들은 점차 진일보하며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저자는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중국을 모른다"며 "중국의 진면목을 살피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국인을 살찌웠는가를 역추적해야 한다"고 했다.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윤덕노 지음/더난출판/1만4000원>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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