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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강남역 살인사건 3년, 차별과 혐오의 갈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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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3년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젠더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졌고 국가 차원의 대책도 신설ㆍ확대됐다. 그러나 최근 혜화역이나 광화문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를 다른 한편에서 할 수 있다. 모든 사회 현상은 양면성을 갖기 때문에 지난 3년간 변화를 긍정 혹은 부정으로만 갈라서 말하기는 분명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러운 현상 하나가 있다. '차별'의 자리를 '혐오'가 대체한 것이다. 어느덧 무조건 여성혐오 혹은 남성혐오라는 말만 사용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차별과 혐오는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개념은 물론 아니다. 게다가 정도에 따라 차별과 혐오 사이에는 일정 정도 오가는 흐름이 있다. 그래서 어떤 것을 차별이라고, 또 어떤 것을 혐오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성희롱은 차별인가 혐오인가? 강간은 차별인가 혹은 혐오인가? 남편이 여성 배우자를 때렸다면 이는 차별인가 혐오인가? 한 마디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오와 차별은 분류해서 사용해야 하는 개념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립과 분리만 있고 상호이해와 변화는 불가능하다. 혐오는 내 앞에 있는 대상을 결국에는 제거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차별은 그 누군가 존재함으로써 나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필요한 개념이다. 차별을 하다 더 이상 사용가치가 사라지면 없앨 수 있다. 차별이 혐오로 옮겨가는 스펙트럼의 과정이다. 그래서 차별과 혐오를 분류하되 분리해서 이해하면 분명 안 된다.


화장실에 숨어 있다 여성만 골라서 죽였다면 적개심에서 비롯해 여성이라는 존재를 없애버리는 혐오 행위이다. 나치 히틀러 정권에 유대인은 혐오의 대상이었지 차별의 대상은 아니었다. 정권 초기 나타난 차별 양상은 결국 유대인을 제거하는 혐오로 가는 출발에 불과했다. 이렇게 차별이 혐오로 필연적으로 옮겨가는 과정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과정도 있다.


고용에서의 성차별, 여성만의 경력단절과 독박육아, 유리천장 등 현상은 차별이지만 종국적으로 여성을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몰아내려는 혐오의 결과는 아니다. 남성과 동등한 생산성을 올리지만 여성에게 더 낮은 임금을 줌으로써 노동력을 착취하는 성차별적 경영의 산물이다. 차별 받는 여성의 존재가 이윤 극대화를 위해 필요한 구조인 것이다. 노동시장 성차별은 혐오와 상대적으로 쉽게 구별해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반면 성희롱의 경우에는 차별과 혐오의 경계가 모호할 수 있다. 살인이나 강간은 혐오의 결과이며 개인에 대한 폭력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폭력의 피라미드를 떠받치는 밑바닥에 성희롱 등 차별적 행위가 있다. 여성혐오로써 살인이나 강간을 하는 남성은 성희롱도 한다. 그러나 성희롱을 하는 남성 대다수는 폭력의 정점으로까지 가지는 않는다. 따라서 여성 비하 성희롱적 발언을 무조건 여성혐오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필자를 포함한 한국 사회 다수 남성은 성희롱과 장난ㆍ농담의 구별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사회화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이렇게 가부장적 남성성에 길들여져 살아온 대다수 남성들은 자신의 (성희롱적) 발언을 통해 여성을 의식적ㆍ무의적으로 차별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여성혐오로 규정할 수 없다. 남성다운(?) 언행을 받아줄, 순응하는 여성의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남성다운 언행이 차별적이면서 성희롱이라는 문제제기를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황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고 변화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남성들이 성평등적으로 변화할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혐오가 차별을 대체함으로써 여성과 남성은 서로를 없애야 하는 대립적 관계 구도가 형성되었다. 일베와 메갈, 워마드의 성공 포인트이다. 그러나 제거 대상은 성차별이다. 여성이나 남성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파트너로서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공론의 장을 만들 때이다.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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