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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ounter]권혁재의 핸드폰 사진관-사진 인류, 자유를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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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의 핸드폰 사진관

권혁재의 핸드폰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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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지머리에 중절모를 쓴 사나이가 무언가를 깊이, 오래 지켜보고 있다. 그의 시선은 어딘가에 고정돼 움직일 줄을 모른다. 긴장감이 번진다. 문득 모자챙 아래 사나이의 눈매를 본다. 순간 맥이 탁 풀린다. 순한 눈. 코끼리의 눈. 그가 시선을 돌려 이쪽을 바라본다. 어쩔 수 없다. 나도 당신도 마음을 동여맨 갑주와 가죽끈을 풀 수밖에. 맨마음으로 그를 만나야 한다.


권혁재는 사진가다. 주류 언론사의 기자로 밥벌이를 한다. 그러나 본질은 예술가다. 사진기를 도구로 삼은 그의 예술은 인물을 다룰 때 남다른 경지를 열어 보였다. 예술가로서 그의 진면목을 집약해 보여주는 책이 2016년에 나왔다. '권혁재의 비하인드'. 뛰어난 풍경사진가인 저널리스트 조용준은 책장을 넘기며 희열했다. 그는 "인물들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때로는 눈물짓기도 하고 더해서 자신의 꿈을 약속하면서 그렇게 인생을, 살아냄을, 행복을 고백했다"고 적었다.

권혁재의 예술은 주로 작업실 안에서 이뤄졌다. 공간은 어두웠다. 그는 전기를 동력 삼아 만들어낸 빛을 강하게 통제함으로써 인물의 내면을 밝혔다. 그러던 그가 몇 해 전부터 슬슬 나들이를 했다. 나들이가 잦다 싶더니 그 결과를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벗들과 공유했다. 그는 통제할 수 없는 광선, 자연의 빛이나 거리의 가로등 아래서 서슴없이 사진을 찍었다.


시간을 포착하는 권혁재의 무기는 바지 주머니 속에서 덜렁거리는 휴대전화, 스마트폰이었다. 그가 쓸 수 있는 인공의 빛은 기껏해야 휴대전화기의 조명 장치였다. 예술가의 나들이는 남다른 흔적을 남겼다. 그 결과를 오롯이 모아 세상에 내놓은 것이 '권혁재의 핸드폰 사진관'이다. "숙련된 사진작가는 사진 한 장을 통해 바람을 표현하고, 시간을 담아낸다. 작가가 파인더를 통해 들여다보고 구현해내는 것은 단순히 세상의 한 조각이 아니라, 작가가 독자적인 시선으로 재편한 또 하나의 세계이자 독자적인 우주이기도 하다."(출판사 서평)


권혁재에게 휴대전화 사진기는 '자유'다. 그는 머리말을 쓰면서 "비로소 자유를 얻었어"라는 사진가 강운구의 고백을 기억한다. 커다란 장비를 짊어지고 삶 속을 누빈 사진가가 '단출한 핸드폰 하나를 손에 든 순간' 손에 넣은 것은 '자유'이며 '해방'이었다는 것이다. 권혁재의 공감은 예술의 포기나 일탈이 아니다. 그는 저널리스트다운 명료함으로 도구를 이해했다. 거기서 새로운 영역을 실험했다. 휴대전화 사진기로 사람을 찍을 때 그는 확인한다.

"렌즈 특성상, 가깝게 있는 이마가 넓어지고 눈이 커지며, 상대적으로 멀리 있는 턱선이 갸름해집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지 않지만, 대부분 그렇습니다."


휴대전화 사진기는 고성능 광학기기가 아니다. 하지만 권혁재는 이 기계를 들고 자신만의 차원에 진입한다. 그의 시각 세계는 일상의 공유라는 SNS의 세계를 넘어 최초의 예술이라는 진경으로 나아간다. 여기 예술의 근본주의라고나 할 '낯설게 하기'의 원리(defamiliarizationㆍ빅토르 시클롭스키)가 작동한다. 예를 들어 검은 대리석에 몽글몽글 맺힌 빗물에서 권혁재는 '꽃'을 본다. 그는 꽃을 향한 그리움이 빗물에서 꽃을 보게 했다고 생각한다.


"검은 대리석에 금속 재질 건물 외관이 비친 풍경입니다. 대리석은 사물을 받아들이는 거울 역할을, 빗물의 표면장력은 건물 외관 왜곡 역할을 합니다. 두 조합이 비를 꽃으로 보이게 한 겁니다. 사실 별것도 아닙니다. 보되, 엉뚱하게 본 것이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25쪽)


꽁지머리에 중절모를 쓴 사나이는 어느 늦봄 바람이 잦던 날 배수구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코끼리의 시선으로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갑자기 분 바람에 마른 꽃이 우수수 졌다. 꽃잎이 물낯에 흩어지자 배수구에는 새 꽃들이 만발하기 시작했다. '배수구의 철제 뚜껑과 하늘빛 반영이 물의 표면장력에 의해 꽃처럼 보인 것'이다(14~19쪽). 권혁재는 꽃의 무리를 '하늘꽃'이라고 이름 지었다. 하늘빛이 만들어낸 꽃, 배수구는 그에게 하늘꽃 그득한 하늘정원이 되었다.


권혁재 지음 | 동아시아 | 2만2000원




허진석 기자 huhba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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