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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다시 호흡 맞추는 인권전문가, 국가책임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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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혁신위원회 문경란 위원장·서현수 인권분과실무위원장
2008년 인권위서 스포츠분야 인권실태조사 등 손발 맞춘 경험
"체육계로부터 완전히 분리해 전문·신뢰성 갖춘 기구 필요" 권고

문경란 스포츠혁신위원회 위원장(오른쪽)과 서현수 1분과 실무위원장이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혁신위 1차권고안 브리핑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이미지출처:연합뉴스>

문경란 스포츠혁신위원회 위원장(오른쪽)과 서현수 1분과 실무위원장이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혁신위 1차권고안 브리핑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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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2007년 한 여자 프로농구 감독팀이 소속 선수를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듬해 들어선 학교 운동부의 성폭력 등 성비위 문제와 이를 둘러싸고 일선 체육계 현장의 인식이 어느 수준인지를 보여주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체육계 민낯이 드러나면서 국민은 경악했다. 특정 소수의 일탈도 문제였지만, 그러한 범죄행위를 바라보는 체육계 일각의 별 일 아니라는듯한 태도는 시민 상당수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체계적 대응을 위해 스포츠인권 TF를 만들었다. 전국 단위 실태조사와 인권교육을 하는 한편 전문가로 구성된 협의체를 꾸려 제도개선방안을 내놨다. 이듬해 중도탈락 학생선수에 관해 실태조사를 했고 2010년엔 대학 학생선수에 대해 조사했다. 스포츠분야에 적합한 인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교육ㆍ체육당국, 대한체육회 등 체육단체에 권고하기도 했다.

인권위 차원에서도 의욕적으로 나섰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취임 전부터 인권위를 눈엣가시로 여긴 이명박정부는 인권위 조직ㆍ예산을 대폭 줄이며 옥죄었다. 학생선수 등 스포츠분야 인권은커녕 인권이라는 가치 자체를 언급하기 어려워졌다. 취임 첫해 쇠고기수입협상 과정에서 촛불집회가 불거졌고, 인권위는 과잉대응한 경찰 등 정부에 쓴소리를 했다. MB 청와대는 이를 마뜩잖게 여겼다. 감사원ㆍ행안부가 나서 조직을 줄였고 특정인사를 찍어 축출하도록 한 블랙리스트도 있었다. 인권위는 행정부는 물론 입법ㆍ사법 등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라는 명제가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


2008~2009년 인권위 안팎으로 어수선했을 당시, 학생선수ㆍ은퇴선수 등 스포츠분야 인권을 적극 살펴보던 이가 문경란 스포츠혁신위원회 위원장과 서현수 서울대 연구원이었다. 문 위원장은 참여정부 말기에 임명된 상임위원(차관급)이었고 서 연구원은 인권위 주관부서의 사무관으로 있었다.


문 위원장은 외풍에 시달리던 2010년 임기를 채우지 않고 물러났고 서 연구원은 이보다 앞서 2009년 인권위를 떠나 유학을 다녀온 것으로 전해졌다. 둘은 10년가량 지난 2019년 다시 손발을 맞추게 됐다. 인권전문가인 이들이 다시 손잡은 걸 두고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강산이 변하도록 스포츠분야의 인권이 제자리, 오히려 후퇴된듯한 정황을 곳곳에서 손쉽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경란 스포츠혁신위원회 위원장(왼쪽 네번째)이 지난달 24일 충남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대한체육회 관계자들과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문경란 스포츠혁신위원회 위원장(왼쪽 네번째)이 지난달 24일 충남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대한체육회 관계자들과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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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열린 스포츠혁신위 1차권고 브리핑에서 문 위원장과 서 연구원은 함께 마이크 앞에 섰다. 전 국가대표 코치의 성폭력 문제가 불거져 혁신위가 구성된 후 내놓는 첫 권고라 언론의 관심도 컸다. 권고안은 도입부에 "민주화 이후 한 세대가 넘는 동안 제대로 개혁하지 않은 채 방치한 국가의 책임이 크고 무겁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혁신위는 국가가 모든 국민의 헌법적 기본권을 보장할 책무를 다하지 못한 데 대해 통렬히 반성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구체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체육계로부터 독립된 조사ㆍ징계요구기관을 만들고, 전문적이고 신뢰할 만한 신고접수ㆍ상담 창구를 갖춰야 한다"는 권고를 두고 일각에선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지만, 권고안을 뜯어보면 정작 한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내용이다. 각종 비리신고를 접수하는 곳은 대한체육회 등 체육단체가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국가대표 선수가 활용할 법한 스포츠인권센터의 인권상담실은 선수들이 합숙하는 진천선수촌 내에 있다. 대한체육회가 과거 '자정운동본부'라는 것을 만들어 운용했듯, 문제가 생기면 외부 힘을 빌리는 대신 체육계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결과는 우리가 지켜보는대로다.


피해자가 신고를 해도 도움받지 못하고 오히려 2, 3차 가해를 받는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체육계 미투가 불거지기 전까지 체육계 누구도 이러한 기형적인 구조를 바꿀 생각을 못, 아니 하지 않았다. 혁신위는 1차권고안에서 그간의 스포츠인권보호 대책을 두고 "2010년 이후 인권위 차원의 실태조사가 더 이상 이뤄지지 못했고 (중략) 대한체육회의 반발과 형식적 스포츠인 권익센터 설치 등 스포츠인권 가이드라인의 광범위한 채택과 실효성있는 현장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혁신위는 체육계를 비롯해 문체부ㆍ교육부ㆍ여성가족부 등 정부부처의 대응 시스템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지난 2월 혁신위 출범 후 분과별로 정기ㆍ수시회의를 수십차례 여는 등 바지런히 움직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거 이 사안에 천착했던 인권전문가의 내공이 밑바탕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스포츠분야의 특수성, 지난 십수년간 정체됐던 원인을 분석한 것은 물론 미국의 세이프스포츠, 캐나다의 붉은사슴 선언 등 얼마 되지 않은 해외 실증사례를 권고안 곳곳에 넣는 등 시ㆍ공간을 꿰뚫는 권고안은 그렇게 나왔다. 혁신위는 이 같은 권고안을 다음 달 말까지 서너차례 더 발표할 예정이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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