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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시대에도 수첩 1000만개 파는 '몰스킨'의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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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業스토리]헤밍웨이·피카소를 이용한 '스토리텔링'으로 성공
수첩 아닌 '쓰이지 않은 책', '창조적 시도의 도구'로 각광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가교 역할하며 문구업계 혁신 주도

디지털시대에도 수첩 1000만개 파는 '몰스킨'의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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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스마트폰이 점령한 디지털 시대에 수첩과 필기도구를 판매하라고 한다면 어떨까. 많은 사람들은 "어렵다"고 답할 것이다. 북극에서 에어컨을 파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실제로 전 세계 문구 시장의 성장률은 5% 미만이다. 그런데 이탈리아 '몰스킨(Moleskine)'은 여전히 연간 1000만 개 이상의 수첩을 판매하면서 저무는 아날로그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몰스킨은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보다 오히려 매출은 성장세다. 2015년 기준 매출액은 1억2800만 유로(약 1687억원)으로 10년 전인 2008년(397만 유로, 약 52억원)과 비교하면 30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

몰스킨의 수첩이 특별해서일까. 몰스킨 수첩은 일반 수첩들과 다를 바 없는 디자인인데다 예나 지금이나 한 결 같이 단단한 커버, 수첩 안에는 별다른 일러스트 하나 없는 프렌치 바닐라 색의 종이를 고수하고 있다. 디자인적인 요소라고는 둥근 모서리와 수첩이 벌어지지 않도록 커버에 부착된 밴드, 색상을 추가한 정도다. 가격도 15~35유로(약 2만~4만원)로 비싼 편이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은 디지털 시대에도 몰스킨에 열광하는 걸까.

"피카소, 헤밍웨이가 썼다는 그 수첩"
[출처- 몰스킨 공식 홈페이지]

[출처- 몰스킨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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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스킨은 '2세기에 걸쳐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예술가들이 사용한 전설적인 노트북'이라고 광고한다. 몰스킨의 슬로건도 이를 반영한 "전설적인 노트북(The Legendary Notebook)"이다. 그런데 하나 드는 의문은 몰스킨이 1997년 설립됐다는 점이다. 1961년에 생을 마감한 헤밍웨이가 몰스킨 브랜드의 수첩을 사용했을 리 없다는 얘기다.


이 광고의 전말은 이렇다. 몰스킨은 말 그대로 두더지(Mole)의 가죽(skin)이다. 두더지 가죽처럼 만든 재질을 뜻한다. 200여 년 전 프랑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당시에는 몰스킨이 특정회사의 상표가 아닌 프랑스제 수첩을 총칭하는 말로 쓰였다. 미색의 속지와 검은색 커버, 이를 묶어주는 고무 밴드가 특징이다. 실제로 고흐나 피카소, 헤밍웨이 등 지식인들이 즐겨 쓰는 수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프랑스제 몰스킨은 1986년 장인의 사망으로 생산이 중단됐다.


몰스킨의 전신인 '모도 앤 모도(Modo & Modo)'를 설립한 공동 창업자 프란체스코 프란체스키와 마리오 바루치는 이 역사에 주목했다. 브랜드 슬로건을 '전설적인 노트북'으로 내세우고, '예술가들의 아이디어 수첩'이라고 광고했다. 즉 유명 예술가들이 사용하던 모양의 수첩을 만들어 판매한 셈이다.

몰스킨의 광고사진 [출처- 몰스킨 공식 홈페이지]

몰스킨의 광고사진 [출처- 몰스킨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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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는 몰스킨에 대해 "몰스킨은 소비자들에게 수첩을 판매하면서 '창조'라는 가치도 함께 팔았다. 사실 질 좋은 종이뭉치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광고하는 스토리는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고 평가했다.

몰스킨의 탁월한 스토리텔링은 곳곳에 묻어있다. 광고사진도 주로 그림을 그려놓은 몰스킨, 악보가 그려진 몰스킨 등 ‘창조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재에도 유명 디자이너와 작가, 건축가들이 몰스킨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소개하고 이들의 다 쓴 수첩을 이용해 전시회를 열면서 끊임없이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또 하나의 전략은 몰스킨이 자사의 수첩을 '쓰이지 않은 책'이라고 표현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메모하고 스케줄을 관리하는 수첩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기록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창조적인 시도를 하면서 완성해나가는 책이라는 감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런 브랜드 콘셉트를 유지하기 위해 몰스킨은 책에서 볼 수 있는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수첩에 붙여 판매한다.

"종이냐, 디지털이냐. 몰스킨은 둘 다"
[출처- 몰스킨 공식 홈페이지]

[출처- 몰스킨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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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고 베르니 몰스킨 최고경영자(CEO)는 "몰스킨이 디지털과 경쟁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우리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 창의적인 세계에서는 '종이냐, 디지털이냐’를 고민하지 않는다. 둘 다를 포함하는 선택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몰스킨은 2010년 수첩에 적은 필기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업로드하면 온라인으로 공유할 수 있는 앱을 개발했다. 아날로그의 첫 디지털화였다. 이후에도 스마트 노트 '페이퍼 테블릿'과 카메라가 내장된 '스마트 펜' 등을 차례로 출시했다. 종이에 그리는 것보다 좋을 수 없다는 점을 고려했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 스마트폰에서 그 그림이 나타난다. 그리고 사용자는 저장된 내용을 수정, 삭제, 색상까지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다.


몰스킨의 이런 변화에 미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몰스킨은 모두가 포기한 손 글씨의 가치를 지켰다. 모든 것을 디지털화 하지도, 아날로그만을 고집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몰스킨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다"고 평가했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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