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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ounter]번역: 번역하면서 번역되고 있는 사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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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파란 2019년 봄호

[Encounter]번역: 번역하면서 번역되고 있는 사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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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사실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그러나 아는 것이 곧 보는 것은 아니다. 양자 사이에는 다시 어떤 진화나 차이가 가로놓인다. 나무라는 말이 없다면, 그래서 나무라는 개념이 없다면 어떻게 나무를 인지하겠는가? 단순해 보이지만 사물과 말과 개념의 삼항조가 없이는 인식은 불가능하다. 나무를 보고는 있지만 표현할 말이 없는 상태를 가정해 보라. 지식에 중력과 실감을 부여하는 것은 경험이다. 그 구체적인 접촉의 지점에 고유어가 위치한다. 우리는 넓은 의미의 ‘나무’를 보지만 예컨대 그것을 ‘층층나무’라는 말로 구체화되면서 경험의 장으로 진입한다. 나무와 층층나무가 모두 경험장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이 경험장이 다시 새로운 지식이나 개념과 결합하면서 일종의 (층층나무라는) 편광렌즈 역할을 하는 것이다. 편의상 단순화하자면 아직 특정되지 않은 ‘나무’처럼 자연과 세계에 대한 일반화되고 개념화된 지식은 지식과 개념의 대조체계 위에서 일종의 수학적인 개념과 지식으로(처럼) 우리 내면에 구축된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은 확실히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이 된다. 보편지식과 고유한 경험이 이렇게 변증법적인 관계 위에서 공진화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 일반적인 지식과 경험이 그 자체로 올바름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또한 보편지식과 개별 경험을 이항 대립시키면 마치 민족과 국가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일치된 견해란 언제나 비교대조표 위에서 상대적으로만 존재하는 허상이어서, 무수한 시비와 정오의 난투극이 존재한다. 실수로부터 배우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리고 말과 개념과 사물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반목과 갈등은 오늘날 정치적 영역에서 더욱 극렬한 듯하다. 한국남성이 한남충으로 호명되는 카프카적 현실은 당연하게도 남성이 벌레였던 시절을 소환하고, 하루아침에 역사 속의 5.18을 추문으로 바꿔버리는 저들의 증강현실은 저들의 심리적 현재를 가리킨다. 또한 저들의 현재가 독재라고 명명될 만한 것이라면 그 이전의 그들의 자유가 얼마나 독점적이고 비대했었는지를 추측하게 한다. 반대의견의 존중은 민주주의의 출발점 같은 것이지만, 사사건건 떼를 쓰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제 부모에게 ‘엄마 아빤 엄마 아빠 하고 싶은 대로만 한다’고 할 때 거기에도 새겨둘 점은 있을 것이다. 올바름과 민주주의 사이에는 실로 하나의 기대가 있을 뿐 유사성은 없다.

이렇듯 개념과 말과 세계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며 부단히 그 간극을 넘겨보아야 한다. 그러나 수잔 손택이 사실을 초과하는 견해들을 경계하면서 번듯하게 “해석에 반대한다”라고 제목을 붙였듯이 여기에는 이 간극 때문에 초래하는 무수한 스트레스와 피로가 지시되어 있다. 명백한 역사적 사실조차 하나의 추문으로 만들어 버리는 해석의 난무와 있었으면 하는 날조된 가짜 뉴스의 시대는 그야말로 우리가 예술적 은유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지나치게 사실 초과적인 해석들이 주는 피로감은 무엇보다 해석의 잉여 앞에서 인내와 날카로움을 잃어가게 만드는 유령이다. 문학장 안에서도 한때 사실의 세계를 가치 지향적으로 타개하고자 했던 야심찬 ‘미래파’ 이후, 정치시, 미니멀리즘 등 새로운 차원을 이루기 위한 세대, 감각, 화자, 해석적 현실들을 무수히 요청했으며 지금도 분기된 여러 형태로 진행 중이다. ‘독재’라는 명확한 단어 하나에도 합의될 수 없는 삶과 맞서 더 어린 세대, 더 참신한 감각과 언어가 부단히 다른 말들로 ‘번역되는’ 시도가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해석이 사실을 위협하는 이 정보사회의 글쓰기는 그래서 점점 더 번역의 양상을 닮아가고 있다. 아니, 이토록 변화무쌍한 세계에서 보편어와 개별어의 공진화는 근원적으로 글쓰기 자체가 번역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계간 ?파란?에서는 문학장 안에서 (결과로서 제출된 무수한 번역물에 대한) 검토지연 사태로 누적된 피로감, 그리고 삶과 현실에서는 비교적 자명한 개념에 대해 좁혀지지 않는 거리와 반목의 심화, 바야흐로 일물일어의 신화는 봄 햇살 아래로 찬란하게 흩어지는 벚꽃 잎처럼 즈려 밟히는 저간의 사정 위에서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싶다는, 누군가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특집의 총론을 종축으로 놓고 영어, 독어, 불어, 한문 번역의 계열 번역을 횡축으로 배열하였다. 조재룡이 번역을 이미 번역의 대상을 선별하는 것에서부터 하나의 문제제기이며, 번역하는 과정에서 번역된 새로운 한국어의 예술적 통사론(에크리튀르의 재배치)이 발생했다는 통찰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황현산이 좋은 번역은 있어도 잘된 번역은 없다고 말 할 때, 해석적 견해란 언제나 사실과의 대응이나 일치가 아니라 지향과 번역불가능이라는 잉여영역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번역된 결과를 안고 있지만 이 역시 새로운 번역까지만 통용되는 임의의 변통일 뿐이다. 종종 영원을 흠모하고 불멸을 꿈꾸어온 많은 작가들이 자신들의 기대와는 달리 하나의 임의성에 지나지 않는 자신의 처지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럴수록 우리의 말들이 여전히 ‘사이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차분하게 목도하고, 그럴수록 더 의욕적인 새로운 사이공간을 창출해내지 않는 한 날조된 해석이 사실로 둔갑하는 숨 막히는 사회라는 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음을 깨닫는다. 임의적이고 가정적인 언어를 하나의 현실로 추인하는 고된 작업이 없다면 번역은 없다. 마찬가지로 문학도 없고, 시도 없으며 진실과 정의도 추문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문제는 차이가 아니라 인내이다. 오늘의 이 격동적인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삶이란 오히려 명확한 사실보다는 하나의 추문에 가깝다. 우리의 삶과 존재가 하나의 추억이 되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삶이 저 폭풍으로부터 몸을 웅크린 채 간신히 자신을 지키고 있는가.

이현승 시인·가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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