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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환희와 슬픔 속에 봄날은 간다

최종수정 2019.04.16 11:40 기사입력 2019.04.1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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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어김없이 언제나 한 여인이 기숙사 근처의 공터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야생화 한 움큼을 꺾어서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그 꽃은 낡은 식탁 위에 자리가 정해졌다. 꽃병으로 변신한 빈 우유병에 담긴 야생화는 초라한 식탁을 봄의 정원으로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그 꽃들은 반가운 손님처럼 새로운 빛깔과 향기로 다정하게 인사해줬다. 그 소박한 화사함과 풋풋한 생명력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줬고 봄기운을 느끼게 했다. 동시에 거기엔 힘겨웠던 학생 시절의 가난과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육아의 힘겨움으로 점철된 봄날의 강철같은 현실이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그 여인은 베란다에 봄꽃 화분을 몇 개 들여와서 봄 단장을 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이상할 것이 없다. 봄의 이미지는 녹록지 않은 삶의 현장에서 그래도 모종의 아름다움과 환희로 다가온다. 그러나 지금ㆍ여기의 봄의 현실은 위태롭고 애달프다. '봄날은 간다'라는 대중가요는 아직도 서정성이 짙은 우리 국민들의 애창곡이자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로 사랑을 받고 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1954년에 발표된 이 노래에는 전쟁으로 겪었던 겨레의 상처와 아픔을 위무(慰撫)한다. 그 얄궂은 운명 앞에 무릎 꿇지 아니하고 웃고 울면서, 함께 어울려 고달픈 현실과 역사를 살아내고자 했던 서민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담겨있다. 그리하여 언제나 애상을 자아내는 이 곡조는 요샛말로 인생사의 '웃픈' 진실의 정한(情恨)을 한국적인 멜로디에 담아 실어내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정신적 황폐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엘리엇의 '황무지'에 실린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월에 피어나는 생명의 환희는 그 생명을 꽃피운 어떤 죽음으로 지불한 대가이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님의 죽음은 새로운 환생을 가져오지 않고 공허한 추억으로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봄의 찬란한 웃음과 깃발은 님의 부재와 다시금 돌아올 수 없음을 확증시키는 슬픔의 기표(記表)이기에, 사월은 너무도 잔인할 수 있다.


올해도 선유도의 산수유, 진해의 벚꽃, 광양의 매화, 강화도의 진달래! 모두 눈부시게 아름답다. 한국 현대사에 새겨진 제주도의 4ㆍ3 사건의 비극, 백주년 기념일인 4ㆍ11의 임시정부수립, 4ㆍ16의 세월호 참사의 눈물과 4ㆍ19의거의 가열찬 함성을 기억한다. 지금은 나라의 현실과 미래를 걱정하며 분노하는 나라 사랑꾼들의 함성도 드높다. 그러나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했던가!


사계절은 이어달리기다. 봄은 여름, 가을, 겨울 덕택에 존재한다. 만약 여름의 부지런함, 가을의 성실, 겨울의 인고가 없었다면, 약동하는 봄의 화려함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의 번영이 앞선 세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역사의 봄'을 위해 헌신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앞선 세대들! 그분들의 분노와 눈물로 표현되는 이유 있는 나라 걱정이 제발 기우(杞憂)에 그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그래도 봄의 정원은 날이 갈수록 아름답고 풍성한 생명력으로 환희에 차 있다. 올해도 이렇게 환희와 슬픔 속에 봄날은 간다.

강학순 안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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