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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록]조양호 회장, '수송보국(輸送報國)' 외길 걸어온 巨人

최종수정 2019.04.08 11:23 기사입력 2019.04.0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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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박소연 기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이 결코 유리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어떠한 환경이나 조건에서도 도약을 향한 도전정신과 실천의지가 꺾이거나 약화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2006년 정석대학 졸업식 기념사에서)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헤어져 낯선 곳에서 근무하느라 고충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여러분은 회사를 대표해 국가적 대사인 올림픽을 성공시키기 위해 평창에 있는 것이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세 번의 도전 끝에 어렵게 유치한 평창동계올림픽이 반드시 성공적으로 개최되어야 한다." (2016년 한진그룹에서 올림픽 조직위원회로 파견된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고객에 행복을 선사하기 위해 안전과 서비스라는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항공사 경영은 안전과 서비스를 토대로 고객 행복을 만들어 내는 활동이다. (2017년 1월 대한항공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통해)


"가족들과 관련된 문제로 국민 여러분 및 대한항공의 임직원 분들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죄송하다. 대한항공 회장으로서, 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제 여식이 미숙한 행동을 저지른 데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내 불찰이고 내 잘못이다.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대한항공 임직원과 직접 마음의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에도 머리 숙여 다시 한번 사죄한다."(2018년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갑질횡포에 대한 한진그룹 입장자료에서)


8일 고인이 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틈이 날 때마가 강조했던 문구는 한진그룹의 창업이념인 '수송보국(輸送報國)'이었다. 수송으로 국가에 보답한다는 뜻이다.

마지막까지도 국가행사와 고객의 행복, 가족들의 허물을 챙긴 조 회장의 좌우명은 '지고 이겨라.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태에서 행복을 찾아라.'였다.


자신의 좌우명대로 불확실한 경영환경을 직면할 때마다 창업 정신을 되새기며 굴하지 않는 경영소신과 업무전략을 보여줬다.

183cm의 큰 키만큼이나 재계에서 묵직한 무게추 역할을 해주던 재계의 '거인'이 영면에 들었다.


◆정많고 소탈했던 회장님=조양호 회장은 꼼꼼하면서도 소탈한 사람이었다. 경험을 통해 업무를 장악하지만 권위적이지 않은 태도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한항공의 취항지를 결정할 때 그룹 총수로서 보고만 받는 게 아니라 직접 사전답사를 했다. 허름한 숙소에서 자고 패스트푸드를 먹으면서 18일 동안 6000 마일(9600km)을 손수 운전하며 미국 곳곳을 살펴본 일화로 유명하다.


엄격하게 따지고 하나하나 확인하기보다 자유롭고 소탈한 스타일로 알려졌다. 대외행사에 비서를 동행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간이나 격식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늦은 밤에도 노트북을 열어 회사 현황을 파악하고 결재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이 많고 합리적이지만 부끄러움을 타는 면도 있다고 한다. 사진찍기가 취미로 출장길에 항상 카메라를 챙겨갔다. 사진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조양호 회장이 찍은 사진이 대한항공 광고에 사용되기도 했으며 임원들에게 디지털 카메라를 선물하기도 했다.


◆마당발, 민간 외교관 조양호=국적 항공사 오너로서 재계에서 가장 폭넓은 대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어 민간 외교관이라는 말도 나왔다. 2014년부터는 한미재계회의 위원장을 맡아 미국과 경제교류의 가교역할도 했다.


특히 한국과 프랑스 관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양호 회장은 '한-불 최고경영자클럽'의 한국 측 회장으로 활동하며 화학, 신소재 분야 등에서 두 나라의 공동연구와 개발협력을 추진했다. 또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을 후원하는 등 경제 분야뿐 아니라 문화적 교류에도 앞장섰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11월 한국을 방문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여받았다.


국제 인맥을 활용해 여수 엑스포 유치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지원했다. 특히 2009년 9월부터 2011년 7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까지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지구 16바퀴 거리인 64만km를 돌며 34개의 해외 행사를 소화했다. 2012년 올림픽 유치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기도 했다.


2014년에는 한진해운 상황이 좋지 않은 등 어려움이 있었으나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올림픽 준비에 힘썼다. 2016년 5월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기까지 후원사 유치와 조직 정비 등 올림픽을 치르기 위한 기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2008년부터 대한탁구협회 회장을 맡아 탁구 종목을 지원하고 있다. 2009년부터는 아시아탁구연합 부회장도 맡았다. 2018년 세계선수권 남북 단일팀 구성 등에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 운송 외길, 뚝심으로 한 평생=그룹 안팎에서 조 회장은 1974년 12월 대한항공에 입사한 이래 항공·운송사업 외길을 45년 이상 걸어온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국내·외를 통틀어 조양호 회장 이상의 경력을 지닌 항공·운송 전문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그는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업무에 필요한 전 부서들을 두루 거쳤다.


조양호 회장은 1974년은 1차 오일쇼크가 한창인 시절 대한항공에 처음 발을 들였다. 1978년부터 1980년에도 2차 오일쇼크도 대한항공을 직격했다. 연료비 부담으로 미국 최대 항공사였던 팬암과 유나이티드항공은 수천명 직원 감원할 정도였다.


하지만 조양호 회장은 선친인 조중훈 창업주와 함께 줄일 수 있는 원가는 줄이되, 시설과 장비 가동률을 높여 불황에 호황을 대비하는 선택을 했다. 이는 오일쇼크 이후 중동 수요 확보 및 노선 진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에도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 임차 등을 통해 유동성 위기에 대처했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에 보잉737NG(Next Generation) 주력 모델인 보잉737-800 및 보잉737-900 기종 27대 구매 계약 체결한 점도 계약금 축소에 기여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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