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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커뮤니티케어에 대한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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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고혈압, 당뇨병을 진단 받은 85세 김씨 할아버지는 독거노인이다. 평소 변비와 소화 장애, 식욕 감소로 매끼 죽 두세 숟가락을 겨우 먹고, 반찬은 주로 김치 한 가지다. 최근 폐렴, 독감 등 반복적으로 병을 앓다 보니 누워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게 됐고, '언제까지 살아야 하나' 회의감이 든다.


위 사례는 필자가 방문 진료 때 경험했던 흔한 노인의 모습이다. 김씨 할아버지는 동네의원에서 고혈압, 당뇨, 소화제 등 합쳐서 10가지에 달하는 약물을 매일 복용하지만 복용 지도를 받을 기회는 없다. 영양섭취 불균형이 심하고 하루 에너지 공급량도 부족하지만 이를 교정해 줄 영양 전문가가 없고, 실제 재료를 구하고 요리할 여력도 없다. 평소 신체 활동량이 부족한 탓에 사용되지 않는 근육이 점점 위축되고 여러 관절의 기능이 쇠퇴했다. 결국 김씨 할아버지는 여생을 생존을 위해 '버티는'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7년 후면 5명 중 한 명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 사회가 된다. 노인 인구의 증가는 의료비의 상승과 함께 의료 난민의 증가로 이어지고 결국 정부 재정을 고갈시킬 우려가 높다. 그렇다고 의료 이용을 제한하거나 노인 인구를 조절할 수는 없다. 결국 한정된 재정상태에서 의료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추진하고 있는 커뮤니티케어가 그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방문 진료 의사가 약을 처방해 주고 입원치료가 필요한 경우 지역병원에 연결해준다. 방문 간호사와 방문 약사는 약복용을 잘 하고 있는지, 현재 혈압과 혈당이 어떻게 조절되고 있는지 체크해준다. 물리치료사, 운동치료사가 정기적으로 찾아와 관절운동과 함께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해주고, 영양사는 영양식단을 관리해준다. 그리고 사회복지사가 생활지원서비스 연결과 함께 돌봄 지원을 관리해준다. 이 모든 정보를 방문 의사, 간호사, 약사, 운동ㆍ물리치료사, 영양사, 사회복지사뿐만 아니라 김씨 할아버지와 가족들에게 공유하고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커뮤니티케어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를 구현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현실적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첫째, 일본에서도 커뮤니티케어가 재정 절감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은 재정 투여가 필요하며 대상자와 제공되는 서비스의 우선순위와 효율성을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결정해야 한다. 커뮤니티케어가 특정 직역의 수익 모델로 악용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


둘째, 대한민국 의료이용 지도가 변화돼야 한다. 무조건 빅5 병원, 대학병원을 선호하는 현상이 극복될 수 있도록 국민과 정부, 의료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1차 의료의 질을 높이고, 동네 주치의가 나의 몸을 더 잘 관리해준다는 의사-환자의 신뢰가 구축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의료의 효율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다.


셋째, 방문의료를 제공하는 보건의료인들이 포괄적 진료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어야 한다. 한국의 세분화, 분절화된 의료의 한계를 넘어서 노인의학 영역의 통합적 진료를 제공할 수 있는 노인 주치의로서의 역량을 가진 의사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


'노인'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지만, '노인 환자'가 되는 것은 예방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커뮤니티케어가 '노인 환자'를 어떻게 지원할 것이냐에 관심을 갖지만 앞으로는 '지속 가능한 건강 노인'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 그리고 '노인 환자'를 조기 발견해 빠르게 '건강 노인'으로 되돌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향후 다가올 초고령 사회에서 '노인 지옥'이 아닌 '노인 천국'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신현영 한양대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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