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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외길 건설엔지니어'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의 주문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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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해 말부터 올 한해 내내 “이게 나라냐, 국민의 뜻, 사람중심 경제” 같은 말들을 참 많이 들어왔습니다. 나라, 국민, 사람 같은 무심코 써오던 말들이 참으로 무겁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링컨 대통령의 연설문구에 나오는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을 사람, 인민, 국민 같은 단어를 써서 번역하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말하는 ‘people’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다 왔든지 새로운 땅에서는 모두 다 평등하다는 개념일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을 갖고 사는데 큰 불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국력이 크게 신장되면서 위상에 걸맞는 국격을 요구받고 있고,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같은 국가의 기본 틀에 대하여도 다시 생각을 가다듬어야 하는 역사적 발전 과정에 들어와 있습니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기본단위는 원자로부터 시작되지만, 원자가 모여 분자가 되면 다른 성질을 갖게 됩니다. 그 분자가 세포를 이루고, 세포가 기관이 되어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몸을 구성하게 되는데, 단계가 오를수록 더 고도의 기능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기관들은 각각의 일들이 아주 정확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손이나 발 등은 생각의 지배를 받아 움직이지만, 심장은 쉬지 않고 스스로 움직입니다. 이게 헝클어지면 몸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다시 기관이나 세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원자로 돌아가서 흔적조차 없어져 버립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세포에 해당한다면 각자 종사하는 일은 신체의 기관에 비유될 것입니다. ‘홍길동’이라는 사람은 그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나 기관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성격이나 행위 등으로 남들과 구별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각자가 종사하는 일들이 잘 어울려 정확하게 작동할 때 건강한 ‘나라다운 나라’가 될 것입니다. 국민(nation)을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라고 일컫는 학자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자기가 만든 국민이라는 정의에 따라 살 것을 강요했던 권력자들도 많았습니다. 물론 지구 상에는 아직도 많습니다. 여의도에 계신 분들이 공직자들을 불러다 놓고 “국회의원을 뭘로 아느냐”고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자기들이 대표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국민의 정의(定義)가 과연 무엇인지 헷갈릴 때도 많습니다.
종교와 신앙이라는 단어도 일상에서는 혼용됩니다. 글자 뜻대로라면 종교(宗敎)는 ‘으뜸되는 가르침’이고 신앙(信仰)은 ‘믿어 우러러봄’이 됩니다. 종교에 대한 정의가 무척 다양하면서도 나름대로 객관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신앙은 그런 객관성을 뛰어넘는 무엇이 있다고 믿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초인간적 또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믿음으로 집단을 유지하게 되므로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동일체를 형성하게 합니다. “네 믿음의 깊이를 보여달라”만큼 강력한 주문은 없을 것입니다. 순교(殉敎)가 대표적이지만 신앙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것은 기본이고, 부모를 고발하는 행위도 일어납니다.

또한 그렇게 자신의 믿음이 강할수록, 내가 믿는 종교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보거나 배척하는 마음이 강해집니다. 그리고 종교와 관련한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기면 내 종교인 경우에는 인간이 속죄의 대상이 되지만, 남의 종교이면 교리의 잘못으로 몰아버립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좌우 논쟁은 주로 ‘어떻게 생산하고 분배해서 함께 사느냐’의 경제제도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마치 신앙적 행태를 보입니다. 현상의 해석이 심각하게 왜곡되고, 상대에 대한 배척이 증오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혈연적 동질성과 사상적 이질성을 갖고 있는 집단과 전쟁이 끝나지 않은 채로 또 한 해를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황제의 나라에서 공산인민혁명을 거쳐 지금은 시장경제를 도입한 사회주의국가 중국이 있습니다.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놓고 인류의 현대사에서 가장 격렬한 실험을 한 대표적인 나라일 겁니다.

과거는 지울 수 없고 현재는 과거와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다고 느끼지만 조금 전의 미래이었고 또한 바로 과거가 됩니다. 세포가 기관으로 진화하기까지는 수만년이 걸렸을 겁니다. 우리 몸의 가장 중요한 기관인 눈과 귀는 앞을 향해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자연의 섭리가 그 속에 숨어있습니다. 뇌 속에 저장된 과거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지금 해야 할 행동에 유용한 경험으로서 가치가 있을 뿐입니다. 눈과 귀가 뒤에는 안 달린 이유입니다.

한 집안도 그렇듯, 적어도 제대로 된 나라라면 그 나라를 물려받아야 할 어린 세대들에게 털어야 할 과거가 있다는 것부터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또한 어느 누구에게도 정의라는 이름으로 그러한 행위를 할 권한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걸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자기 아버지의 잘못을 아직 크지 않은 어린 자녀들에게 가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역사적 평가는 아무나 아무 때나 자기 잣대로 하는 것이 되면 안됩니다.

기술의 발달은 분명 사람들의 생존에 풍요로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울려 함께 사는 주제로 눈을 돌리면 갈등의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정보가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이 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온갖 탈진실의 유령들이 언론을 장악하고 권력을 독점한 세력들이 이를 이용해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삶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밝아오는 새해는 서로 이성으로 소통하고 감성으로 패자를 껴안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나라를 잘 알고 사랑하는 어느 외국 언론인의 지적처럼, 짧은 현대화의 역사에서 기적처럼 성장한 대한민국이 정치에서도 빨리 성숙한 나라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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