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국정원의 행태를 보자.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댓글 공작으로 개입했고,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으며, 간첩사건을 조작해 무고한 시민을 괴롭혔다. 국정농단 사건에서도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배후였고, 극우세력의 시위를 사주했다는 오해도 받고 있다. 그러나 막상 북한의 정권교체, 핵실험, 미사일 개발 등 국가안보에 긴요한 정보수집은 소홀했다는 비판이 계속 나왔다.
그러므로 국정원 개혁은 시대적 긴급과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작금의 개혁방향이 반드시 옳은 것이라 보기 어렵다. 필자는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로,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개혁되는 시점마다 중심에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몇가지 정보기관 개혁에 관한 경험도 얻었다.
첫째, 정보업무는 해외와 국내를 엄격하게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같은 민주국가는 대개 CIA 기능과 FBI 기능을 분리한다'는 사실은 이제 고전적인 해석이 됐다. 9ㆍ11사태 이후 미국도 대통령 직속으로 옥상옥격인 국가정보총괄(DNI)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보 총괄은 국가정보원의 기본임무에 속한다. 만약 국정원을 해외정보원으로 개편한다면 대통령 직속 정보기관 총괄책임자를 또 두어야 한다.
셋째, 정보의 원칙을 준수하라는 것이다. 정보기관장은 정보사용자에게 정보만 보고한다. 대책을 논하거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난다. 그런데 우리 정보기관은 정보를 수집하고 대책까지 강구하는 악습에 젖어있다. 그래서 월권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정보를 근거로 정책을 결정하는 주체는 대통령 자신이다. 결코 그 권한을 정보기관장에게 주어서는 안된다.
국정원의 타락은 제도 때문이 아니다. 인적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수시로 정보참모가 제공하는 정보에 귀기울이며, 대통령이 중심이 돼 정책결정을 하면 정보기관은 그 임무범위 내에서 위기관리에 만전을 기할 수 있다.
설사 국정원이 해외정보원이 되고, 국내정보업무를 다른 기관으로 이관한다고 해도 그 기관이 정치개입이나 이권에 물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국정원ㆍ검찰ㆍ경찰ㆍ국세청ㆍ감사원 등 스스로 권력화 될 수 있는 기관들은 상호견제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것이 현책이다. 이를 자르고 재단하면 또 다른 불균형으로 인해 권력이 집중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역사에서 충분히 배웠다.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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