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층에서 일했는데, 1년간 한 번 정도나 마주칠 정도였어요. 그것도 비서진들 사이에 가려진 채로…."
사석에서 듣는 얘기들은 조금은 적나라하다. 전통적인 대기업에 근무했던 이가 퇴직 후 털어놓은 말은 얼마나 폐쇄적인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불현듯 이런 대화가 생각난건 우리 사회에 소통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하고 있어서다.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영역에서 소통의 중요성이 강박처럼 따라다닌다. 민간이건 공공이건 모두 마찬가지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대통령 선거 후보주자로 뛰던 지난달 하순 "우리나라는 소통이 안 되는 게 문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말을 꺼내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 자신이 얼마나 소통을 잘 해왔는지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소통을 강조하는 말로는 제격인 듯싶다.
'소통'이라는 화두는 언제부턴가 사회 전반에 던져진 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누구나 소통을 강조하는 시대다. 그러면서도 쉽게 풀리지는 않는다. 하긴 쉬운 문제가 아니니 화두로 던져졌으리라 싶다.
그럼에도 소통하며 살아왔으며, 그렇게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노라는 말들이 적지 않다. 반 전 총장처럼 말이다. 소통을 잘 함으로써 화합에 기여하고 효율을 높이고자 노력해 왔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다. 자신있게 소통능력이 뛰어나다고 공언하는 이들의 실제 소통능력 평가점수는 얼마나 될까. 서로 마음을 열고 의견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실 "언제라도 방에 들러 이런저런 얘기 들려주면 좋겠다"고 하거나 "허심탄회하게 마음속 얘기를 털어놓으라"고 권유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보면 답은 바로 나온다.
선진적 조직문화가 자리잡았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는 정보통신계통의 기업에서도 소통의 방식과 관련한 고민이 깊은 모양이다. "점심 같이 먹자는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죠. 그런데 10분쯤 지나고 메일을 받은 직원이 방으로 찾아왔어요. 점심 약속은 따로 없어서 좋긴 한데, 혹시 무엇을 준비해 참석해야 하는지 코멘트를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묻길래 좀 당황했죠." 그 친구의 얘기는, 상사가 무심코 던진 말에 대한 직원의 반응이 전혀 가볍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만큼 젊은 계층에서마저 일방통행식 소통에 익숙해졌다는 방증이요, 소통을 어떤 식으로 해야할지를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소통이 쉽지는 않다. 의지가 중요하긴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소통을 해야 할지를 가늠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실 소통의 문화에 익숙지 않았던 과거를 깨고 단박에 원활한 소통을 하기 쉽지 않으며, 심지어 갑자기 바뀌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초연결 사회에서 '기술적 소통'은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 인터넷이나 무선 주파수를 통해 서로가 소통하며 살아가도록 잘 짜여진 상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사물인터넷이나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에서도 기본은 소통이다. 블록체인으로 연결되고 있으며, 인공지능을 통해 언어의 장벽도 넘어서기 일보 직전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간의 소통은 쉽지 않다. 다른 영토로 시야를 돌려보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소통이라는 화두는 풀어가야 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숙제다. 불통을 소통이라 착각하거나 불통이 익숙하다고 그대로 따라하다가는, 김유신의 말처럼 처참한 운명을 맞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소통의 숙제를 받아든 곳은 어디인가. 그곳으로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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