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신임 부총리' 카드는 자동 폐기 수순
힘 빠진 황교안·유일호 국정 장악, 아직은 의문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9일 가결되면서 경제팀은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 때에 준하는 비상 대응 체제로 돌입했다. 경제사령탑은 사실상 경질됐던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당분간 계속 맡을 여지가 많다. 그 어떤 경제적 과제보다 혼란 최소화에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 제시됐던 '임종룡 신임 부총리' 카드는 현재 분위기상 폐기 쪽으로 무게가 기울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경제팀 수장만이라도 교체하는 등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없진 않다"면서도 "국민 여론이나 법적 해석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볼 때는 황 총리 운신의 폭이 좁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재부 내에서도 유 부총리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 보는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
지난달 2일 신임 부총리 내정 이후 반 야인(野人)으로 지내왔던 유 부총리는 상황에 따라 6개월 이상 더 자리를 지켜야 할 처지다. 앞으로 총리(대통령 권한대행)와 각 정부 부처 장관은 자리를 지키며 국정 공백 수습에 주력할 것으로 관측된다.
유 부총리 입장에선 풀어진 마음을 추스르고 제2의 임기를 준비해야 하지만, 이를 보는 주위 시선은 밝지 않다. 최근 유 부총리는 현장 방문 등 외부 활동을 부쩍 줄이며 퇴임 수순을 밟고 있었다. 경제팀 실무자들의 업무 집중도와 속도도 부쩍 떨어졌다.
기재부는 "이미 2004년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대처해 본 경험이 있기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며 "당시 조치를 매뉴얼 삼아 개략적인 대응 계획은 마련해 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경제사령탑 이헌재 부총리와 현 유일호 부총리는 처한 상황과 카리스마 등 모든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노 대통령 탄핵한 가결 때 고건 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과 이 부총리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경제 안정을 이끌었다. 이 부총리가 탄핵 가결 두시간여 뒤 낸 성명에서 "책임 지고 경제를 챙기겠다"고 밝힌 것은 지금까지 두고두고 회자된다. 반면 국정 농단 사태의 책임 소재에서 자유롭지 못할 뿐 아니라 힘도 많이 빠져버린 황 권한대행·유 부총리가 격랑 속 대한민국호(號)를 잘 이끌어갈지 경제 주체들의 걱정은 커져만 가고 있다.
한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7일 우리나라의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종전 2.7%에서 2.4%로 하향조정하면서 "고령화나 4차 산업혁명 등 메가트렌드에 어떻게 적응할지가 중요한데 (한국만) 뜨거운 논쟁에서 뒤처진 느낌"이라며 "지금 정치적 불확실성에 관심을 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 별도로 경제 정책은 경제 정책대로 제 갈 길을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경제 연구 기관들도 이미 2%대 초중반까지 내린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추가로 낮출 기세다. 기관들 중 가장 낮은 2.2%로 내년 성장률을 전망한 LG경제연구원의 이창선 수석연구위원은 "탄핵 정국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은 당연히 긍정적이지 않다. 대외 여건이 좋지 않은데 대내적으로도 불확실성이 커졌다"면서 "경제 정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탄핵 등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대외 신인도가 떨어질 여지가 많다"며 "금융시장 불안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동시에 소비 심리와 투자 심리 제고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종=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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